가스 버너와 고기

by 서운인혜

화요일 점심마다 복지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오늘은 특별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 시간이 되어 식당에 갔는데 어르신들께서 분주하게 테이블에 신문지를 까셨고 이내 가스 버너가 놓이게 되었다. 매달 마지막 주는 잔치국수가 나오는 날이지만 오늘은 거기에 더해 싱싱한 한우가 준비되어 있었다. 지소에서 유일하게 함께 일하시는 팀장님께서 오늘 다른 지소로 출근하셨기에 나는 혼자서 면사무소 공무원분들 사이에 끼어 식사를 했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에 푸른 상추까지 먹으니, 최고의 한끼 식사가 되었다.


함께 식사하는 분들이 잘 모르는 분들이다보니 대화를 하진 못했고 혼자 생각에 잠긴채 밥을 먹었다. 한우가 맛있다는 생각보다 가스 버너에 얽힌 추억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여름이 되면 우리 가족은 자주 계곡에 놀러가서 놀았다. 맑고 깊은 물에 몸을 담그고 노는 것도 좋았지만, 아빠와 엄마가 가스 버너에 구워주시던 삼겹살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게 맛있어서라기보다도, 풍성히 싸주신 쌈에 담긴 애정이 선명하게 내 마음 속에 남았다. 그 여름에 계곡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입에 고기 쌈을 넣던 것이, 내 어린시절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내가 꿈꾸는 가정의 모습,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가족의 모습은 그 시절의 기억 속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 읽은 제시문 중 '아이에 대한 관심'에 관한 글이 있었다. 글에 따르면 관심은 크게 '형상에 기초한 관심'과 '형상을 초월한 관심'으로 나뉜다. 전자는 언제나 성과와 평가가 결부되는 관심으로, 그 예로는, 아이에게 숙제를 했는지, 집안 일을 다 마쳤는지, 이번 시험에서는 몇점을 받았는지 등을 묻는 관심이다. 후자는 아이의 존재 자체에 기울이는 관심이다. 여기서 아이는 평가의 대상도, 결과를 내야하는 존재도 아니고, 자신만의 존재성을 지닌 존재로 여겨진다. 형상을 초월한 관심의 예로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아준다든지, 아무 말 없이 아이의 눈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긋이 바라봐준다든지 등의 행동이 있다. 필자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가 진정한 관계를 맺는 '순수한 시간'은 오직 형상을 초월한 관심에서만 나온다.


돌이켜보면 가스 버너와 함께했던 계곡의 추억이 그토록 아름답게 여겨지고, 여전히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그 시간들이 순수한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계곡에서는 해야 할 과제도, 보여줘야 할 성과도 없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하게 소모적이고 유희적인 활동만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존재 자체로 바라봐주는 따스한 시선이 있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보냈던 그 시간, 그러한 순수한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참된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고, '인간다움'을 경험하는 시간일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도 어린시절의 순수한 시간을 나는 오랫동안 동경하였고, 그래서 '바쁜 일상'이라는 표현을 몹시 싫어했다. 사색과 머뭇거림, 고요한 경청과 존재의 교감이 있어야 하는 일상이, '해야 할 일들'과 '수치로 된 평가들'로 가득차는 것이 싫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때로는 좋은 성과들을 내기 위해 분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마음 한 켠에는 '순수한 시간'에 대한 갈망이 놓여있고, 내가 꾸리게 될 가정, 내가 양육하게 될 아이는 그러한 시간으로 충만해지기를 소망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잠깐의 회상만으로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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