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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Nov 22. 2023

우리 학교에 폭탄이 있어요

저는 오늘 사흘째 병가(*신체의 질병으로 인한 치료를 위해 직장에 내는 휴가) 중입니다. 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자로서 자가격리 권고를 받아들여 그제부터 오늘까지 사흘 간의 병가를 얻었지요. 남들이 한참 정신없이 바쁠 시간에 집에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고 별의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제가 교감이었을 때, 함께 근무했던 한 교사가 떠올랐습니다. 방학을 포함하여 6개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고도 열두 달 월급을 다 받는 '교사가 직업인 사람'이었지요. 동료 선생님들은 '병가의 귀재' 또는 '병가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핵폭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간혹 '폭탄'이라고 불리는 구성원을 만나기도 합니다. 조직 사회에서 폭탄이란, 조직의 문화를 해치고 조직의 질서와는 다른 언행으로 파괴력을 행사하거나 그럴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요.



저에게는 선생이었습니다. 당시 어떤 교장, 교감도 동료도 김 선생과 함께 근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학교들은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듯 김 선생을 주기적으로 다른 학교로 떠넘기고 있었지요. 김 선생은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에게까지 온갖 민폐를 끼치고, 기상천외할 핑계와 병을 빙자하여 공무원으로서 법적으로 허용된 병가 60일과 연가 21일을 해마다 탈탈 털어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저도 당시 교감으로서 힘들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김 선생의 수업활동, 생활지도 등 교육과 관련된 학생, 학부모, 동료선생님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 제 머리가 지끈거렸지요. 그리고, 큰 골칫거리는 김 선생의 병가를 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멀쩡하던 김 선생이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그때마다 아파서 죽겠다고 전화하는데, 사실이냐고 따져 물어볼 수도 없고 찾아가서 확인할 수도 없었지요. 그런데, 김 선생이 병가를 사용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었습니다. 김 선생이 병가를 쓰는 경우는 먼저, 수업 공개의 날입니다. 수업 공개의 날에는 어김없이 아프다고 아침에 출근 시간이 임박하여 알렸습니다. 그리고, 운동회와 축제 등 학교에서 힘든 이벤트가 있는 날에도 김 선생은 아팠지요.


제가 김 선생의 병가와 관련된 행정적인 절차와 업무 처리 중에서 특히 고민되었던 것은 매번 방학과 연결되는 장기간 병가였습니다. 예를 들어 2023년 7월 21일이 방학식이라면, 김 선생은 6월 26일 월요일부터 7월 21일 금요일까지 휴일을 뺀 20일간의 병가를 쓰고, 이어서 방학을 맞게 되지요. 한 달을 초과하지 않는 병가는 휴일을 빼고 병가일수를 계산하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신청하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김 선생은 6월 24일 토요일부터 여름 방학에 들어가게 되는 셈입니다.


다른 시각에서 말하면, 성실하게 근무하는 선생님들보다 김 선생은 한 달 먼저 방학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김 선생은 병가를 신청할 때마다 병명이 명확하고, 실제 운영 중인 병의원에서 발행한 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병가로 학교에 출근하지 않는 김 선생에 대한 동료교사들의 불평과 민원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동네 마트에서 보았다, 백화점에서 보았다, 여행 간다고 자랑했다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김 선생의 병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지만 몸조리 잘하라는 위로의 말까지 해주며, 병가 사용 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대체교사를 구할 수밖에 없었지요.


특히 방학과 이어지는 김 선생의 병가와 연가를 처리하다 보면, 저는 관리자로서 무력감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폭발해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김 선생의 병가 사용에 대하여 교육청에 특별감사를 요청하려고 했습니다. 직원의 근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저의 책임에 대한 징계나 행정 처분을 받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교장 승진을 앞둔 저를 염려한 교장 선생님의 만류로 그만두고 말았지요.


올해 제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는 2024년 1월 5일부터 겨울 방학이 시작됩니다. 김 선생이었다라면 벌써 겨울 방학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김 선생은 그동안 사용하고 남아 있는 병가 일수 범위에서 먼저 진단서를 제출하고 1차 병가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때,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병가 일수를 며칠만 남겨두지요. 그리고, 1차 병가가 끝나갈 무렵에 다시 2차 진단서를 제출합니다. 남아 있는 병가 일수를 초과하는 진단서를 내면서 모자라는 것은 연가 일수에서 충당해 줄 것을 요청할 것입니다. 연가 일수는 근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김 선생의 경우에는 21일 정도의 연가를 쓸 수 있었지요.


아무튼 제 기억에 김 선생은 교육공무원으로서 법으로 정한 병가와 연가를 하루도 남기지 않고 사용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해마다 그랬지요. 김 선생은 함께 근무하는 사람으로서는 최악의 동료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거나, 직원 관리에서 태만하다고 저를 책망하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단서 등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면 의심이 들어도 뭐라 말할 수도 없지요. 당사자가 눈치채게 의심하거나 따져 묻기라도 했다가는 당장 인권침해나 갑질로 신고되는 사안이니까요.



김 선생은 제 교직 생활 중에서 초유(初有), 미증유(未曾有), 전대미문(前代未聞), 공전철후(空前絶後), 유일무이(唯一無二), 독일무이(獨一無二)한 핵폭탄급 관심 교사였습니다.


이제는 저도 퇴직한 지 1년이 지났고, 김 선생은 저보다 훨씬 앞서 퇴직했습니다. 김 선생의 병가 사용과 관련된 무성한 소문과 동료 선생님들의 불평도 세월이 흘러 다 지난 일로 묻히고 말았지요. 그러나, 저는 70대에 접어든 김 선생이 어떤 일들을 회상하며 살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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