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 알고 지내는 교장 선생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9월에 승진 발령을 받은 초보 교장이지요. 제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 교장 선생님은 학부모 민원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속이 많이 상한 말투로 제게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교문에서 아이들의 등교를 살피는 아침맞이를 하고 들어오는데, 두 사람이 교장실로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1학년예담이 엄마와 할머니라고 소개했지요. 아이 할머니가 주도적으로 처음부터 이야기의 대부분을 혼자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마치 싸우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지요.
어제 하굣길에 어떤 아이가 예담이를 밀쳐서 벽 모서리에 얼굴을 다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담이를 밀친 아이를 찾아서 당장 자기 앞에 데려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만약 그 아이를 못 찾으면 교장 선생님이 치료비와 향후 성형수술비를 주어야 한다는 협박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나선 것은 예담이 엄마인 며느리가 온순하여 학교에 와서 할 말을 다 못 할까 봐 미덥지 않아서라고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제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신발을 갈아 신고 있었답니다. 그때, 누군가 뛰어와 예담이와 부딪쳤는데, 예담이가 넘어지면서 벽모서리에 얼굴을 부딪쳤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피가 나지는 않았지만, 다친 부분이 벌겋게 되어서 담임 선생님이 보건실에 데리고 가서 처치받고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아침에 등교한 아이를 살펴보니 옅은 멍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담이 할머니는 담임 선생님의 해명이 끝나기도 전에 삿대질을 하고 소리를 질러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여자애 얼굴에 흉터라도 남으면 어쩔 거예요? 누가 책임지냐고요?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가 다쳤으면 집에 전화를 해 주어야지요. 선생님이 평소에 우리 예담이한테 얼마나 무관심하고 홀대하는지 알만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시설 관리를 어떻게 하셨길래 벽 모서리에 우리 아이가 얼굴을 다치냐고요? 벽 모서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셨어요? 당장 안전하게 조치하세요.”
그리고, 예담이 할머니와 어머니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교장실에서 나갔다고 합니다. 오전 내내 교장실에 앉아서예담이를 넘어뜨린 아이를 찾아내라, 당장 사람을 불러서 모서리를 안전하게 하라, 아이들 관리를 소홀히 한 담임교사를 징계하고 교체하라, 향후 성형수술이 필요할 테니 배상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초보 교장 선생님의 근심 어린 하소연을 듣고 나서, 저는 민원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실 제가 해결 방법이랍시고 해줄 말이 없는 민원 사례인 것 같았습니다.
학부모를 포함한 대다수의 민원인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교장이 해결한다고 알고 있거나, 교장이 해결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아이들도 교장실로 와서 자기들의 불만과 요구를 말하기도 합니다. 학교의 민원인들은 교장에게 직접 말해야 즉각적이고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장실은 민원의 최전방일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그곳은 '교장실'이라는 팻말만큼 엄중하거나, 실내에 흐르는 클래식 선율처럼 우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