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교에서 일하면서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들은 아직은 미성숙한 인격체로서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리다 보니 아이들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됨됨이는 더욱이 천차만별이지요. 그중에는 요즘 흔히 말하는 금쪽이도 어쩌다 있습니다. 교사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사명감이고 뭐고 다 팽개쳐버리고, 내다 버리거나 혹은 도망쳐 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 아이 말이지요. 하지만 학교에는 교사로서의 사명감과교육에 대한 희망으로 그런 아이를 품어 변화시켜 보려고 애쓰는 선생님이 있어서 금쪽이도 학교에 다닙니다.
제가 교장이었을 때 만난 금쪽이는 온유입니다. 온유는 300명이 넘는 우리 학교 1학년 아이들 중에서 제일 유명한 아이였습니다. 3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선생님이담임했지요. 온유의 담임 선생님은 3년 간의 휴직으로 인한 공백 때문에 자신의 학교 생활조차 적응하느라 힘들어했습니다. 그런데, 끊이지 않는 온유의 말썽까지 더하여 선생님은 영혼이 빠져나가 버리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심지어 온유 때문에 사표를 내고 싶다는 말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이 집으로 가고 나면, 아주 오랫동안 책상 위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모습은 정말 영혼이 떠난 사람 같았지요.
온유는 입학하자마자 우리 학교에서 인싸가 되었습니다. 2000명이나 되는 학생과 교직원들이 온유를 아는 데는 일주일도 안 걸렸지요. 제가 모르는 일도 있고, 다 기억할 수도 없지만, 온유가 한 일들 중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많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리 지르기, 수업 중인 다른 반 교실문을 벌컥 열고 달아나기, 친구들을 괴롭히고 싸움 걸기, 교실과 복도에서 기어 다니기, 괴성을 지르며 실내에서 질주하기, 책상 위를 뛰어 건너 다니기,사물함마다물건들을 꺼내어 뒤죽박죽 섞어놓기, 1~5층까지 복도 벽에 크레파스로 이어 긋기, 여러 반의 신발주머니를 운동장으로 던지기, 우유가 들어 있는 우유갑을 폭탄처럼 던지기(자기 반 우유를 모두 창밖으로 던져 버림), 선생님들의 구두를 한 짝씩 갖다 버리기, 교직원들에게 욕하거나 놀리고 도망치기, 옥상에서 뛰어내린다고 협박하기 등등 더 많습니다.
온유가 한 일들을 헤아려보면, 다른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통틀어 한두 번 할까 말까 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온유는 이런 일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일상처럼 벌였으니, 온유의 말썽은 당연히 우리 학교의 탑 뉴스였지요. 온유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이라고는 없었습니다. 막무가내로 상황을 회피하고 억지를 부릴 뿐이었지요. 온유는 세상에서 무서운 사람이 없었고, 아버지의 말은 그나마 듣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에 두 차례 면접교섭권을 가진 아버지가 온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온유는 특히 어른들과 마주하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을 불편해하여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교육과 훈육의 여지가 적을 수밖에 없으니 학교에서는 참 힘든 아이였지요.
전문상담교사까지 나서서 여러 가지 교육적 방법을 적용해 보았지만, 백약이 무효(百藥無效)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온유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이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나아지지 않고 민원이 끊이지 않자, 온유 어머니는 민원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온유 어머니의 날카로운 대응 정도가 심하여 담임 선생님이나 피해 학생 쪽에서는 민원을 제기하는 것보다 참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사실은 학교가 온통 떠들썩하게 알아채는 큰 일보다 온유가 교실에서 끊임없이 수업을 방해하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담임 선생님을 더 힘들게 하는 일이었지요. 다행히 온유네 반 교실이 교무실과 교장실이 있는 2층에 있어서 저와 교감 선생님들이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온유의 수업 방해와 아이들을 괴롭히는 정도가 심하면 언제든지 담임 선생님이 교장실에 전화하고, 제가 교실로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요. 저는 1학년 아이들의 입학 적응기인 3~4월에는 거의 날마다 온유네 교실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온유는 교장실에 붙들려 와서 저와 둘만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온유를 제지하고 교실에서 격리하여 진정시키는 일은 교감 선생님이 대신하기도 했지요. 특히 온유가 교실 밖으로 나갔을 때는 교감 선생님이 찾아 나서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을 앞두고 온유가 전학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온유의 환경을 바꾸고, 심리 치료를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전문가의 권고를 보호자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 온유가 적응하지 못하면 다시 올 거예요.”
그렇게 여운을 남기고 온유는 지리산 자락에 있다는 작은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덕분에 학교는 온유에게 빼앗긴 평화를 되찾은 것 같았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온유는 전학간지 석 달이 좀 지나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전입학생 처리 규정'에 따라서 1학년 중 학생수가 가장 적은 반으로 온유를 배정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반으로 가게 된 온유를 전학 가기 전 담임 선생님이 자기 반에 들어오게 했습니다. 예전 교실에서 그나마 익숙한 선생님,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온유가 학교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교육적 판단과 배려였지요.
그 후로, 모든 학교구성원과 온 동네 사람들의 인내와 사랑으로 온유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규칙을 배워가며 매우 더디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온유 때문에 교사로서 비애와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끔 교장실에 와서 사표 내고 싶다고 푸념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곤 했습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