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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Aug 04. 2023

동네에서 제일 힘센 중딩 형님들

- 시설물 관리 고충 -

우리 학교 놀이터에는 시소가 두 개 있습니다. 시소는 저학년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놀이 기구 중 하나지요. 그런데, 이 놀이터에서 휴일 사이에 일어난 사고 때문에 월요일 아침부터 학교가 발칵 뒤집혔어요. 누군가 시소 받침대 네 개를 몽땅 뽑아서 운동장 여기저기에 버려둔 거예요.



시소 받침대란 시소가 올라갔다가 내려와 바닥에 닿을 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자동차 폐타이어를 시소가 땅에 닿는 지점에 절반쯤 박아 둔 것이지요. 제가 자세히 보니, 폐타이어를 세워서 박을 때 땅 속에 묻히는 부분은 시멘트를 부어 묵직하게 고정하고 공사를 했더라고요. 운동장에는 폐타이어와 거기에 붙은 시멘트가 바닥을 할퀴고 간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또 초등학생 발보다는 큰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어요. 폐타이어 네 개를 각각 끌고 다닌 흔적으로 보아 용의자를 최소한 네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수소문했지요.


요즘은 학교에 방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데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라서 어렵지 않게 찾아냈지요. 이웃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학교 졸업생 다섯 명이 용의자로 지목되었어요. 아이들 말로는 '동네에서 제일 힘센 중딩 형님들'이랍니다. 학교에서는 현장을 찍은 사진을 붙인 공문을 중학교에 보내어 적절한 지도를 요청하고 일단 마무리했지요.



그리고 서둘러 시소가 있는 구역을 테이프로 두르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당분간 시소를 이용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행정실에서 공사를 맡기려고 견적서를 받아보니, 공사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갈 것 같았어요. 학교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교육활동비로 써야 할 예산을 뜻밖의 사고로 지출하는 것이 아깝고 속상하지요.


때때로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장난을 치곤 합니다. 이번에는 그 '동네에서 제일 힘센 중딩 형님

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이런 경우에 대부분 대답이 뻔하지요. 그 아이들은 틀림없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시큰둥하게 우물쭈물하며 '그냥요', '심심해서요', '뽑으니까 그게 뽑혀서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기들이 한 일에 대한 처리 비용과 어른들의 노력에 비하면 허탈하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말이지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동네에서 제일 힘센 중딩 형님들'도 어른이 되겠지요. 저는 쓰린 속을 달래며, 그 아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동네에서 제일 힘센 좋은 어른들'로 자라 주기를 말이에요.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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