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이.
제가 환이를 처음 만난 것은 3월 셋째 주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부친상으로 특별휴가 중인 교실에 제가 임시 담임교사로 들어가 환이를 만났습니다. 저는 1학년과 2학년 수업의 일부를 맡았지만, 1학년은 새 학기 적응기간이 끝난 4월부터 제 수업이 계획되어 있어서 3월에는 2학년 수업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임시 담임으로 일주일 간 1학년 교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학교에서는 그 선생님의 특별휴가 동안 아이들을 맡아 줄 선생님을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학교는 교사의 휴가나 유고가 예정 혹은 결정되면 교육청 홈페이지와 관련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하고, 동시에 여기저기 알아보며 대체교사 구하기에 나섭니다. 그러나 기피 학년으로 소문난 1학년 아이들을 맡아줄 선생님을 구하기란 쉽지 않지요. 더구나 3월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비상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게 요즘 초등학교의 사정입니다. 특히 새 학기에 필요한 기간제 교사를 비롯하여 교원 자격증이 필요한 기타 인력들은 3월 이전에 자리가 정해지기 마련입니다. 곧 일자리가 필요한 비정규직 교원들은 이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학기 중에 대체교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결국 학교 내 교원들이 수업이 없는 시간에 돌아가며 그 반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보결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바뀌는 상황이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보결을 배정받은 선생님들 또한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처리할 학기 초 업무가 많기 때문에 보결 시간이 불편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그 반의 임시 담임교사로 들어가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사실 제가 퇴직 후 다시 학교로 가면서 스스로 다짐한 일이, 학교가 어려운 일에 나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에 담임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1학년 교실에 들어가기는 선뜻 내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제가 그 반의 아이들을 맡기로 했으니 일찍 출근하여 교실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의 아이들은 대부분 8시 40분 무렵부터 교실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8시가 조금 지나서 들이닥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 아이는 교실로 들이닥쳤습니다. 그 아이는 체격부터 보통의 1학년 아이들과는 달랐지요. 3학년은 돼 보이는 큰 키와 육중한 몸매에 목소리도 컸습니다. 그리고 제가 용도를 궁금하게 생각했던 교사용 책상에 붙여 놓은 그 책상에 아이가 앉았습니다.
그 아이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부터 외투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것, 의자에 철퍼덕 앉는 것, 책가방을 열고 온갖 것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는 것, 큰소리로 혼잣말을 계속하는 것이 범상치 않음을 제가 알아챈 것은 그다지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자리에 앉아서야 저를 발견한 듯 큰 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우리 선생님 자리에 왜 앉아 있어요?"
"너희 반 선생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못 나오시니까 오늘부터 내가 너희 선생님이야."
"뭐야! 우리 선생님이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웬 늙은 게 와서 선생이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그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교실로 들어간 상황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아이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못 들은 척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 자리는 왜 친구들 있는 데가 아니고 선생님 책상에 따로 붙어 있니?"
"아하, 그건요. 제가 한글을 모르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여기 앉으라고 한 거예요."
그 아이는 부끄러움이나 주저함이 전혀 없는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또 아이는 이내 책가방에서 책과 잡동사니를 쏟아내고도 교실에 있는 장난감, 카드 등을 자기 책상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책상 위에 더는 놓을 자리가 없자 아이는 바닥으로 내려가 교실 앞쪽을 다 차지하고 흩어 놓았습니다. 그 아이는 이미는 교실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고, 저는 그 아이가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환이는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큰 소리로 광고를 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선생님 아빠가 죽었대. 그래서 우리 선생님 올 때까지 이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래."
그 아이가 바로 환이었습니다. 환이는 우리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지나야 하는 꽤 먼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환이는 아빠와 함께 등교하고, 하교는 할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이의 이 등하교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아빠 출근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오다 보니 환이는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 보다 일찍 와서 제멋대로 교실을 누비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는 하교시간을 제대로 못 맞추어 아이가 학교 근처를 배회하거나 엄마랑 살던 빈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 노는 일이 많았습니다. 환이가 학교 안팎에서 문제를 일으키자, 전입학 담당교사가 학구 위반이라는 이유로 전학을 권유했다가 환이 아빠로부터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달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환이는 동네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두렵고 싫은 존재였습니다. 반 아이들은 환이에게 어떤 이유로 얽혀 걸려들어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늘 경계했습니다. 걸핏하면 친구들을 이유라고 할 수도 없는 이유로 윽박지르고 욕하고 때리고, 놀이와 수업 활동도 사사건건 방해하여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경력이 많은 그 반의 담임 선생님에게도 참 힘든 아이였지요. 담임 선생님은 환이 아빠와 한두 차례 면담과 통화를 시도하고 오히려 환이와 소통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환이는 수업 중에 바닥에 누워 있거나 돌아다니고, 책이나 학습지를 찢어버리고, 학용품을 못 쓰게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어 학습 활동을 방해하는 일이 거의 날마다 일어났습니다. 선생님이 제지하면 더 소란을 피우고, 야단치면 몰라서 못하는데 어쩌라고 그러냐고 교사에게 덤벼 수업을 방해했습니다. 거기에 몇몇 아이들이 환이와 어울려 버리면 교실은 순식간에 통제불능의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지요.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고 환이를 지키고 있어야 아이들이 겨우 놀 수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놀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 화단에 대고 오줌을 누는 환이를 발견하고 다음에는 화장실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환이는 곧장 적반하장으로 대응했습니다. '쉬'가 급해 죽겠는데 화장실까지 가다가 옷에다 싸라는 거냐고 소리를 지르며 오히려 눈을 부라리는 것이었습니다. 환이는 기본적인 규칙조차도 귀찮고 짜증 나는 일 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도무지 고분고분하게 듣고 행동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환이가 점심시간만큼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착한 1학년 아이가 되었습니다. 환이는 음식을 여러 번 받아서 먹기에 편하게 배식대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는 것만 욕심낼 뿐 흔한 1학년 아이의 얼굴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환이에 대한 빗발치는 민원과 담임 선생님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서도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환이의 변화를 위하여 인내와 정성을 기울이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환이의 이탈과 도발은 점점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린이날 무렵에 환이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온 환이 엄마와 담임 선생님이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환이 엄마는 이혼 후 이웃 도시로 가서 따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환이의 학교 생활을 자세히 전했지요. 그리고 오늘부터 환이는 우리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환이가 전학을 갔습니다. 입학한 지 100일 만에 엄마가 살고 있는 이웃 도시로 갔다고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은 그동안 환이가 없는 교실을 수없이 상상했는데 그것보다 더 평화롭고 교실답다고 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환이가 전학 간 학교의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이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또 환이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까 봐 두렵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과 마음이 교사로서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