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수업 시간에는 달리기도 합니다. 선을 따라 걷거나 달리기, 장애물 통과하여 달리기, 이어달리기의 주제를 연결하여 아이들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수업으로 진행하려고 저는 꽤 오래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요즘은 교육 관련 도서는 물론이고 포털 사이트나 유튜브에 접속하여 주제어를 검색하면 기본적인 것부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활동들을 쉽게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저처럼 오랫동안 교실을 떠나 있다가 다시 교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오늘은 달리기를 중심 활동으로 한 '주사위 달리기'를 했습니다. 주사위 달리기는 아이들이 커다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숫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며 달리는 놀이입니다. 저는 여기저기서수업 정보를 얻고, 아이들 수준에 맞는 미션을 정하여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병설유치원 교실에 가서 스펀지가 들어 있는 큰 주사위와 40cm는 족히 되는 색색깔의 발모양 블록, 탱탱볼, 훌라후프와 컬러콘, 바구니 등을 찾아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학교의 병설유치원은 입학하는 아이들이 없어서 3년째 휴원 중입니다. 그리고곧 폐원하기 위하여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관련 행정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하는 말을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여러 교육 기관 중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등학교가 먼저 인구 감소의 폐해를 겪고 있는 곳 중의 하나임을 실감하는 일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는 체육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놀이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활동 1] 출발선에서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가 쓰여 있는 컬러콘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오기.
[활동 3]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같은 편을 모아 손을 잡고 달려서 반환점을 갔다가 돌아오기. 이때, 서로 잡은 손이 떨어지면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다시 출발하여 달리기.
아이들은 놀이 규칙을 쉽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빨리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 그런데 저는 진우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진우는 자기나 자기 팀이 놀이에서 지면 이상 행동을 하는 아이입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기도 하고, 으르렁거리며 발을 구르기도 하며, 심지어 자기 팔이나 무릎을 물어뜯는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진우가 다른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할 지경이지요.
이런 진우의 행동 때문에 놀이 결과가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한 활동을 할 때, 저는 어떤 상황, 어느 지점에서 진우가 폭발할지 몰라서 긴장하게 됩니다.
[활동 1]에서 진우네 편이 이겼습니다. [활동 2]에서도 진우네 편이 이기고 있었습니다. 진우는 신이 나서 친구들과 함께 자기편을 응원했습니다. 저도 진우네 편이 거의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주자를 남겨두고 출발선에 선 진우네 편인 다현이가 던진 주사위가 숫자 '6'을 드러내며 떨어졌습니다. 다현이는 실망하지 않고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껏 달렸습니다. 다현이는 재빠르게 컬러콘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리를 여섯 바퀴 돌고 난 다현이는 그만 비틀거리다가 넘어져버렸습니다. 그 사이 다른 편 아이가 가볍게 컬러콘을 한 바퀴 돌고 다현이를 앞질러 달려갔습니다. 마지막 주자까지 달린 결과 진우네 편이 졌습니다. 막판에 승패가 바뀌고 말았지요.
[활동 2]를 끝내고, [활동 3]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흐으으으윽!'
진우가 다현이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며 내지르는 소리였습니다.
"선생님, 화난 오랑우탄 같아요."
제 옆에 있던 아이가 진우를 보고 한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아이들은 놀이에서 질 때마다 이상 행동을 보이는 진우를 달래주고 다독였습니다.
"진우야, 괜찮아."
"다음에는 네가 이길 수도 있어."
"우리끼리 하는 놀이니까 져도 돼."
그런데 반 아이들은 따듯한 말과 배려에도 달라지지 않는 진우의 행동을 이제는 무시하며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둘만 있어도 거의 습관처럼 무엇인가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경쟁을 통해 성장합니다. 저도 교실에서 늘 아이들의 승리에 대한 열망과 좌절, 그리고 회복의 장면을 보게 됩니다. 제가 아무리 양보와 배려가 아름답다고 말해도 일단 놀이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이기려고 기를 씁니다. 많은 활동에서 이기는 아이들과 지는 아이들, 성공하는 아이들과 실패하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패배를 받아들이며 아쉽고 쓰린 마음을 달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하지요.
저는 이미 오래전에진우 담임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진우가 제 수업에서 보인 행동에 대해 전하면서 학부모 상담과 심리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뭐든 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거의 없겠지만 진우의 행동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교실도 하나의 사회입니다. 하지만 미성숙한 사회지요. 사회(社會)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1.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
2. 학생이나 군인, 죄수들이 자기가 속한 영역 이외의 영역을 이르는 말.
3.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가족, 마을, 조합, 교회, 계급, 국가, 정당, 회사 따위가 그 주요 형태.
또한 미성숙(未成熟)은 '아직 성숙하지 못함'이라고 풀이되므로 성숙(成熟)을 찾아서 반대되는 뜻으로 이해하면 미성숙이겠지요. 성숙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생물의 발육이 완전히 이루어짐.
2.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됨.
3. 경험이나 습관을 쌓아 익숙해짐.
제가 일하는 초등학교 1, 2학년 교실은 그야말로 매우 미성숙한 사회입니다. 제가 수업하는 교실에는 본능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앉아 있습니다. 굳이 수치로 나타낸다면 교사가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연상태로 있을 때, 그 아이들의 이성적인 판단과 언행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제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수업에 집중하고 함께하는 친구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활동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또래에 비해서 너무나 다른, 이상 행동을 하는 진우와 같은 아이에 대해서는 걱정이 큽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