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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Jun 24. 2024

꼴찌를 응원하는 아이들

오늘 수업은 고리 던지기가 중심 활동이었습니다. 지난주까지는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놀이교실에서 진행했습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한 고리 던지기는 정해진 곳에 서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컬러콘을 표적으로 하여 고리를 던지는 것입니다. 게임의 규칙은 팀원들이 각각 세 개의 고리를 받아 컬러콘을 향해 던져서 걸리면 5점, 컬러콘에 가까운 정도에 따라 3점, 2점, 1점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이 모두 던진 다음 각각의 고리가 떨어진 위치에 따라 점수를 합하여 상대 팀보다 점수가 많으면 이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기 전에 개인별로 고리를 던지는 연습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연습하는 것을 중간에 몇 번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잘하는 아이들에게 시범으로 던지게 하고 다른 아이들은 관찰하도록 했지요. 그 후 아이들 중에는 고리 던지기 연습 도중에 자신이 잘하게 된 성공의 순간 제게 달려와 기쁨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자기의 성공 경험을 기억하며 말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컬러콘을 훨씬 넘어갔는데, 점점 가까이 던질 수 있었어요."

"제 고리가 컬러콘에 걸렸어요! 제가 컬러콘을 맞히려고 던졌는데 고리가 걸린 거예요!"   



고리 던지기 연습을 마치고 게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차례대로 한쪽 팔에 고리를 세 개씩 걸고 비장한 표정으로 줄 앞에 섰습니다. 아이들은 연습했던 환경과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컬러콘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느라 걸어가 보기도 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고리를 든 팔을 흔들며 힘을 고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마치 올림픽 경기에 나온 선수 같은 비장함마저 서려 있었습니다. 줄에 선 아이가 컬러콘을 향해 고리를 하나씩 던질 때마다 구경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준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준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줍음이 많은 데다가 그동안의 수업에서 볼 때 놀이나 운동에는 관심도 자신감도 없는 듯했습니다. 준이는 수업 중 모둠이나 전체 활동을 할 때는 친구들 틈에 끼어서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친구들 앞에서 자기가 드러나는 개별 활동 상황에서는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드디어 준이가 준비석에 섰습니다. 역시나 준이는 선뜻 고리를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준이의 그 어설픈 몸짓과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보는 사람이 답답하고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아주 쉬워. 그냥 던져 봐."

"괜찮아, 던져!"

"준아, 아까처럼 던지면 돼."


준이는 금방이라도 바닥을 뚫고 들어갈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한쪽발로 바닥을 후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은 점점 붉게 상기되었지요.


"준아, 선생님이랑 함께해 볼까?."


저는 아이들이 한 마디씩 던지는 말에 오히려 점점 주눅이 들어가는 준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제가 준이의 등 뒤로 가서 고리를 들고 있는 오른쪽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셋에 고리를 함께 던지자고 작은 소리로 말했지요. 준이는 저와 함께 고리 두 개를 던졌습니다. 저는 준이에게 나머지 하나는 혼자서 던져보라고 했습니다.


"잘했어. 이제 혼자서 던져 봐."


준이 얼굴이 다시 붉어지고 동공이 흔들렸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 속에서 누군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 그럼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 짜증 나고 (짜증 나고) / 힘든 일도 (힘든 일도) / 신나게 할 수 있는 / 꿈이 크고 고운 마음이 자라는 / 따뜻한 말 "넌 할 수 있어" / 큰 꿈이 열리는 나무가 될래요 / 더없이 소중한 꿈을 이룰 거예요.


"얘들아, 선생님도 못하는 게 많아. 달리기는 지금도 꼴찌일걸? 어렸을 때는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머리핀 따먹기, 이런 것들 다 못 했어. 다른 사람들도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잘하지는 못해. 그런데 너희들은 잘하는 게 많잖아?


"준이 파이팅, 우유 빛깔 이*준!"


경쟁에 익숙한 아이들은 놀이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제 수업에서도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저는 수업이 제 의도와 목표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것 같아 늘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일부러 협동을 유도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도록 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제 수업 중 일부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놀이 활동을 통해 관계를 배우고, 나아가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수업 의도를 먼저 설명하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협동하고 배려하는 활동에 애써 집중하면서 놀이를 합니다. 그러다가 성공을 경험하고 목표에 다다르게 되지요.



오늘 고리 던지기처럼 개인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수업에서는 규칙과 응원을 강조하지요. 하지만 오늘은 뜻밖에 감동적인 응원가로 잘하지 못하는 친구를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는 대부분의 놀이는 과정에서 도전하고 성취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경쟁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가 있고, 이기는 아이와 지는 아이가 생기지요. 하지만, 제가 아이들 중 누구를 더 칭찬하고 또 누구는 힐난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피할 수 없는 경쟁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놀이 활동에 집중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놀이일 뿐인데 그게 뭐라고, 아이들은 놀이나 경기에서 지면 속상해하고 울거나 화를 내기도 합니다. 사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하는 놀이에서 졌다고 해서 학교 생활이나 개인의 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이겼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걸 저는 이미 알고 있지요. 하지만 아이들 중에는 승부에 유독 예민한 아이들이 있어 가끔 과도한 승부욕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누가 무엇을 잘하는지, 부족한 지 서로 잘 모릅니다. 교육과정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며 성취감을 갖도록 운영되기 때문이지요. 예전처럼 인지적 영역을 수시로 평가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의식 속에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얻은 결과로 서열을 매기는 것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이미 제7차 교육과정에서 수준별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면서 학생의 능력, 적성, 필요, 흥미에 대한 개인차를 최대로 고려한 수업을 하도록 한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즉 학생 개개인의 성장 잠재력과 교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임을 강조했지요. 제7차 교육과정 이후 교육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 수시로, 부분적으로 개정하는 교육과정들도 그 근간은 교육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활동을 계획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과 서열, 상대평가에 익숙한 많은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얼마나 잘했는지에 관심을 갖습니다. 즉 다른 아이들과의 상대적 위치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에 비해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의 아이들은 자신의 적성과 장점을 찾아 노력하고 친구들을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비교적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도 점차 자라면서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 지난번보다 얼마나 잘하게 되었는가' 보다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더 잘했는가'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업을 정리하면서 아이들은 오늘의 '에이스'는 경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실 경이가 고리 던지기를 잘한 것은 제가 생각해도 뜻밖이었습니다. 다른 수업에서는 늘 못 하는 아이였거든요. 저는 경이에게 고리 던지기를 어떻게 잘했는지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경이는 친구들의 기대에 찬 표정에 기분이 좋아져서 큰 소리로 대답했지요.


"어렵지 않아요. 그냥 컬러콘에 고리가 걸리게 확 던지면 돼요."


아이들은 경이의 대답에서 대단한 기술을 배운 양 또 한 번 손뼉을 쳐주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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