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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Aug 04. 2023

솔솔 부는 봄바람

- 재욱아, 미안해 -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동요 중에 모차르트 곡이 여러 곡 있지요. 그중 <반짝반짝 작은 별>과 <봄바람>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저는 <봄바람>과 얽힌 일화가 있어서 절대 잊히지 않아요.


제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우리 반에 담배 가겟집 아들 재욱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리고 재욱이가 음악 시간에 불렀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지요. 제가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봄바람>을  부를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였지요.


그 해 이른 봄, 음악 시간에 <봄바람> 노래를 배우고 나서, 선생님은 누가 독창을 해보라고 했어요. 우리 반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지요. 그때, 재욱이가 손을 번쩍 들었어요. 그리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 교단 가운데 섰지요. 저는  재욱이가 노래를 잘하는 친구인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다른 친구들도 그때까지는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이윽고 선생님의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재욱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소이소이 부는 봄바, 쌓인 눈 녹이고

잔디밭엔 새싹이 파 나고요,

시냇무이은  조이조이조이 노하며 흐네."


재욱이가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들은 손으로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며 웃어댔습니다. 그러나, 재욱이는 노래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부르고 자리로 돌아왔지요. 오히려 우리들에게 왜 웃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 후, 재욱이 별명은 '봄바담'이 되었지요.


그때는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어서 아이들에겐 놀잇감도 없고, 약자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자체도 미미했어요. 그래서 키가 크면 크다고 놀리고, 작으면 작다고 놀리고, 공부를 못한다고 놀리고, 부모의 직업이나 외모를 빗대어서 놀리고, 가난과 장애마저 놀림감이 되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만연했던 무지몽매한 시기였어요.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재욱이네가 담배 가게를 닫고 서울로 이사를 가 버렸어요. 원래는 재욱이가 5학년이어야 하는데, 결핵을 앓아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바람에 1년을 유예하고 우리들과 함께 4학년이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지요.


저는 주인이 바뀐 담배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재욱이가 노래했을 때 웃었던 것이 떠올랐어요. 재욱이를  '봄바담'이라고 놀린 것도 후회했지요. 그리고 언젠가 재욱이를 만나면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후로 재욱이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요.


세월이 흘러 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봄바람> 노래를 부르게 되었지요. 저는 그때마다 꼭 아이들에게 재욱이가 불렀던 < 봄바람>을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재욱이한테 사과한다고 말해 주었지요.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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