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 거지와 캠핑카
- 좋은 어른이 절실한 시대 -
* 개근(皆 다 개, 勤 부지런할 근): 일정한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 또는 출근함.
2학년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안전한 생활> 교과의 내용 중에는 캠핑 안전과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캠핑 활동에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익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지요. 우리나라의 캠핑 인구를 7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캠핑하기에 좋은 계절에 맞추어 계획된 교육과정이지요.
저는 여러 수업 시간 중에서 <안전한 생활> 시간이 제일 재미있다는 아이들과 캠핑 활동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할 말이 참 많았어요. 제가 아이들과 함께 텐트와 관련하여 유의할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을 때였지요. 한 아이의 말 한마디에 교실 분위기가 확 바뀌었지요.
"우리는 그런 거 안 해도 돼요. 우리는 캠핑카가 있거든요."
저는 그 아이의 캠핑카 이야기도 들어주고, 다른 아이들의 다양한 텐트 캠핑 이야기도 존중하며, 캠핑이라고는 가 본 적이 없다는 아이의 하소연에도 귀를 기울이며 수업을 진행해야 했지요.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우쭐하거나 부러워하고, 또 비관하는 아이들은 없었어요. 아이들은 그냥 각각 경험한 것이 다를 뿐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시작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개근 거지'라는 말이 되살아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교외체험학습신청서를 한 번도 쓰지 않고 학교에 계속 나오는 아이는 여행도 가지 못하는 개근 거지라고 아이들이 놀린다더군요. '개근 거지'라는 말의 어원과 의미까지 밝힌 것이지요.
저는 학교에서 '개근 거지'라는 말을 하는 아이를 보지 못했어요. 여행을 가지 못하는 친구를 놀리는 아이도 본 일이 없지요. 개근거지라는 말은 결코 일반화도 유행도 되지 않은 나쁜 말이에요. 남보다 조금 더 가진 돈에 근거한 천박한 우월감에 비뚤어진 인성을 가진 어른들이 만들어낸 말이지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개근'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랍니다 다. 요즘 아이들은 개근의 뜻조차 모르지요. 즉, '개근거지'란 개근의 개념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가 만들어 낸 말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학교장 허가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당당하게 여행을 떠난 부모가 아이에게 으스대며 한 말일 거예요.
"나는 능력 있는 부모라서 학교 개근 따위는 따지지 않고 너와 여행을 갈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여행도 못 가고 개근하는 아이는 거지야. 개근거지."
저는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냈습니다. 지금은 매주 14시간의 수업을 통해 2학년, 4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있지요. 그리고 오후에는 늘봄학교에서 여러 아이들을 만나고 있어요.
제가 만난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다른 아이들과 자신을 단순하게 비교하는 말은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개근거지나 휴거, 빌거, 엘사 따위의 은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들은 없어요.
저는 학교교육과정 평가(지필)나 면담을 통한 설문에서 많은 부모들이 '당신의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속마음을 두 번째로 하고, '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지요. 저는 설문에 답한 만큼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개근거지나 휴거, 빌거, 엘사 등의 은어를 만들어 편을 가르며 자식 앞에서 능력을 과시할 때, 아이의 인성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좋은 어른들 옆에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