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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Aug 06. 2023

잊어버린 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 -

* '사과(謝過)'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사과'해야 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하지요.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감사하다, 고맙다'라는 표현 못지않게 잘해야 하는 말이 사과의 말일 것 같아요.


아이들은 집,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 사과하는 방법과 말을 배웁니다. 보호자나 선생님은 아이들이 사과해야 하는 상황을 알아채면 꼭 사과하도록 교육적으로 지도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교육의 효과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색해지는 것인지 어른들 중에는 사과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자존심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잘못했다'는 기준이 달라진 것일까요?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재활용품을 내다 놓고 있습니다. 저는 산책 가는 길에 재활용품을 손에 들고나갔지요. 제가 가지고 나간 재활용품이라야 페트병 하나와 스티로폼 용기 두 개, 비닐봉지 몇 개를 한 봉지에 담은 것, 그리고 페트병 두 개를 묶어서 팔 때 쓰는 플라스틱 고리 하나가 전부였거든요.


저는 주차장 한편에 준비된 큰 마대자루에 재활용품을 분리해서 넣고 돌아서 나왔지요. 그때, 경비원이 저를 부르며 급하게 경비실에서 쫓아 나왔어요.


"뭘 버렸어요? 젓가락을 거기다 버리면 안 돼요!"


저는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하여 무엇이 젓가락처럼 보였을까를 생각했지요. 그러고는 얼른 마대자루 있는 데까지 다시 돌아가서 페트병을 묶은 빨간색 고리를 찾아서 경비원에게 보여 주었지요.

 

"저, 이거 버렸는데요."


경비원은 흘끗 저를 보더니 대꾸도 없이 통화를 계속했습니다. 제가 몇 걸음 가다가 생각하니까 속상한 마음이 커졌어요. 저는 법과 규칙을 잘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더구나 나이 들어가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작은 불편이라도 끼치지 않으려고 더 세심하게 주변을 살폈지요. 그리고, 누구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활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저는 가던 길을 되돌아서 경비원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경비원은 여전히 통화 중이었지요.


"기사님, 무슨 근거로 저한테 젓가락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어요?"

"잘못 봤어요."


경비원은 통화 중에 고개를 돌려 저에게 한 마디 내뱉고 계속 통화 중이었어요. 얼핏 들리는 통화 내용이 그저 안부를 주고받는 것 같았지요. 저는 통화 중인 경비원과 더는 말할 수 없어서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사실 제가 재활용품을 버리는 상황을 경비원이 오해했든, 잘못 보았든 사과하는 말 한마디는 필요하다 싶어서 가던 길을 되돌아가서 말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경비원은 성의라고는 조금도 없이 귀찮다는 듯 '잘못 봤어요'라고 내뱉고는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 경비원은 '잘못 봤어요' 다음에 덧붙여서 해야 하는 '죄송합니다', 또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분명히 빠뜨린 것이지요.


저는 경비원이 통화를 멈추고 제게 말을 했어야 하고, 사소한 일이지만 잘못을 알았으면 사과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정확하게 하려면 그 장소에서 안내를 했어야지요. 먼발치에서 제대로 보지도 못한 것을 가지고 경비초소에서 쫓아 나와서까지 저를 추궁하다니요.


제가 또 말하면 '입주민 갑질'이라고 할까 봐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그 경비원을 보면 불쾌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거나 좋지 않다고 평가될 수도 있지요. 미국의 방위산업체 CEO '빌 스완슨'이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비즈니스 규칙 33가지』에서 지적한 <웨이터 법칙>에 제가 딱 좋은 사람이 아닌 상황이지요. 빌 스완슨은 '당신에게는 친절하지만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거든요.


제가 생각해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흔히 '윗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부터 사과하지 않는 게 만연한 것 같아요. 그렇게 사과하지 않고 버티다가 잊히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과 따위는 안 해도 되는 계층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이 누구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또는 업무적으로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사과하고 상대방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게 맞지요. 그것이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고, 도덕적인 삶의 원칙이며, 상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순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더하여 사과조차 하지 않지요. 오히려 권력이나 돈, 심지어 파렴치함으로 묻어버리려고 하지요.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고, 가르쳐 주고 싶지 않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알게 모르게 배우게 되지요. 바로 이것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빠지고 걱정되는 지점이에요.


우리가 주도적으로 살고 있는 현재는 아이들이 주도할 미래 사회의 밑바탕이 되지요.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좋은 어른들이 많은 사회를 기대합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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