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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Aug 11. 2023

교직(敎職)은 내게 천직(天職)이었을까?

- 어금니를 뽑아준 최고의 치과 의사 -

지난봄에 제가 딱딱한 음식을 씹다가 어금니를 씌운 보철물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며칠이 지나고 말았어요. 그러다 보니, 불편한 대로 익숙해져서 미루고 말았지요.


저는 결국 지난 금요일에야 치과에 갔습니다. 병원에 늦게 왔다고 혼날 줄 알고 마음 졸였지요. 그런데 원장 선생님은 제 차트를 훑어보더니 치아 관리를 잘해서 예상보다 오래 썼다고 칭찬했어요. 그리고 문제의 어금니 뿌리를 뽑은 다음, 두 달 후에 인공치아를 심는 임플란트를 할 거라고 일정을 알려 주었지요.


사실 저는 오늘 아침부터 꽤 긴장했습니다. 이를 뽑는 일은 가기 전부터 뽑을 때, 뽑고 나서 느낌이 항상 좋지 않았거든요. 더구나 뿌리만 남아서 까끌까끌한 혀끝 감촉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어금니를 뽑는 것은 생각만 해도 오금저리는 일이지요. 


저는 예약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고, 곧 차례가 되어 임플란트실로 들어갔지요. 원장이 아닌 젊은 의사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원장 선생님한테 해 달라고 할까 고민했지요.



그런데 발치를 준비하면서 의사 선생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제 어금니를 뽑는 일을 세 가지 경우로 예상해서 자세히 말해 주었어요. 가장 좋은 것은 통째로 뽑히는 것인데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했지요. 그다음은 두세 개 정도로 부서져서 뽑히는 것이고, 가장  힘든 경우는 뿌리가 잘게 부서져서 파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에코백을 배 위에 두고 힘껏 쥐었다 놓았다 하며 감각도 없는 어금니에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뿌리만 남은 제 어금니는 두 개로 부서져서 뽑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공적인 발치 결과에 대해서도 의사 선생님은 저를 칭찬하는 것이었어요. 


"이는 다 부서졌어도 뿌리가 제대로  박혀 있어서 걱정했던 것보다 아주 쉽게 뽑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임플란트를 설명하기 전에  또 저를 칭찬했습니다.


"환자분 잇몸뼈 상태가 아주 좋아요. 이런 환자를 만나서 인공치아 임플란트를 하게 되는 치과 의사는 거저먹는 거예요"


제 평생 이렇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치과 진료는 처음 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후의 진료 과정을 듣고 의사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선생님은 제가 만난 최고의 치과 의사 선생님이세요. 이 치과에는 환자가 오기 싫은 마음이 안 생기겠는데요. 선생님 덕분에요. 제 생각에 선생님은 정말 치과 의사가 잘 맞는 일인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또 오래된 질문을 생각했습니다. 40년 넘게 재직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수 없이 던진 질문이었지요.


'교직은 내게 천직(天職)이었을까? 정말 내게 잘 맞는 일을 평생 한 것일까? 나는 아이들과 학부모, 동료들에게 최고의 교사는 아니더라도 좋은 선생님이었을까?'


하지만 제게 잘 맞는 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제가 되돌아가서 다른 일을 선택하거나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수도 없을 테고요. 아무튼 오늘 치과 의사가 천직(天職)인 듯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제 어금니를 잘 뽑았습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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