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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주 Aug 16. 2023

노인요양원으로 간 발레리나

여고동창 7인의 회갑여행 -제6화-

우리는 여행 4일 차를 출발했습니다. 오늘 있을 가장 큰 이벤트는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노인 전문 요양원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지요. 경자 친구 중에 보령에서 노인 전문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 거예요. 그런데 경자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만나기로 한 친구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저와 같은 반이었던 문경은이었요. 경은이는 발레를 했던 친구였지요. 저는 경은이가 노인 전문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경은이는 제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뮤즈였으니까요. 저는 발레리나 경은이가 어떤 모습으로 60대가 되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안면도에서 보령으로 가는 해저 터널을 이용해서 가니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보령 해저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길이었지요. 제가 오늘 우주의 기운을 모아 축지법(縮地法: 도술로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술법)을 써서 안면도에서 보령까지 눈 깜빡할 사이에 온 것이라고 말했어요.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 친구들이 놀란척하여 모두 웃었지요. 하지만 해저 터널을 지나는 동안 바깥 풍경을 볼 수 없으니, 어린아이들 같으면 깜빡 속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경은이가 운영한다는 노인 전문 요양원은 주택가에서 좀 떨어진 언덕에 있었습니다. 넓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2층 집과 단층집 두 채가 있었는데 외관은 일반 가정집과 같았어요. 대문에 붙어 있는 간판이 없었다면 처음 간 사람은 그곳이 노인  전문 요양원인 줄 모를 거예요.


경은이는 여전히 가녀린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발레를 하는 것은 아닐 테고 타고난 것 같아요. 경은이가 옛날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40년이 훌쩍 지난 세월을 뛰어넘었어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지요. 하지만, 경은이 임을 알고 마주 보니까 알아보는 것이지, 아니면 길 가다가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칠 게 분명하지요.



저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청이 있는 도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처럼 시골에서 온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2학년이 되었을 때, 옆자리에 앉은 경은이는 수업이 끝나면 부랴부랴 강당으로 가는 게 일이었어요. 그리고 경은이가 들고 다니는 보조가방 속에는 저에게는 신기한 발레용품들이 들어 있었지요.


TV나 책에서 보던 발레리나가 제 옆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라니 저는 그저 좋아했지요. 저는 가끔 경은이가 발레 연습하는 모습을 몰래 보기도 했어요. 그때 왜 그랬는지, 강당에서 발레 연습을 할 때는 다른 학생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거든요. 그런데 강당에서 본 경은이는 멋진 발레리나가 아니었어요. 무용 선생님에게 혹독하게 야단을 맞아가면서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연습하는 경은이의 모습에 제 마음이 얼마나 짠했는지 몰라요.


어쨌든 경은이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이후 저와는 연락이 끊기고 말았지요. 또 경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에 모교에서 모이는 기념행사에도 오지 않아서 잊고 지냈는데, 뜻밖에 이번 여행길에서 만난 거예요.  



제가 옛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릴 적 혹은 젊은 시절의 친구들이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예요. 제 생각에 경은이만 해도 발레리나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어서 정말 놀랐지요. 발레리나가 노인 전문 요양원 원장이라니요!


저는 그동안 경은이와 전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경은이의 삶을 생각하거나 상상해 본 일이 없었지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제가 생각했던 발레리나 경은이의 미래는, 아무리 생각해도 노인 전문 요양원 원장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동안 경은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현재의 경은이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고 있는 상황이라 경은이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요. 집에서조차 이런저런 사정으로 보살필 수 없는 노인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더구나 저의 뮤즈, 발레리나 경은이가 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책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앤 셜리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충분히 공감합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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