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동창 7인의 회갑여행 -제5화-
우리는 해미 장터를 떠나 간월도를 향했습니다. 도로 양쪽 들판에서는 벼가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진초록의 들판을 달리는 느낌은 숲길을 걷는 것과는 사뭇 달랐지요. 어디선가 지독한 농약 냄새가 훅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저는 재빨리 자동차의 외부 공기 차단 버튼을 눌렀지요. 하지만 꽤 오랫동안 속이 메슥거렸습니다.
멀리 간월도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은옥이 차를 타고 가던 미숙이였지요. 우리가 해미에 머물던 시간이 간월도 주변 바다가 가장 낮은 간조 시간이었대요. 간조 때는 해변에서 간월도까지 걸어서 갈 수가 있지요. 하지만 이미 간월도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꽃지 해수욕장으로 목적지를 바꾸라는 전화였어요. 그리고 오늘 일몰 시간이 저녁 7시 20분 경이어서 대략 2시간 후면 일몰 전 풍경부터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려 주었지요.
우리는 간월도에서 일몰을 구경하려던 계획을 변경하고 내비게이션을 다시 조작했지요. 그리고 서해안에서 낙조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핫스폿으로 알려진 꽃지 해수욕장을 목적지로 지정하고 달렸습니다.
정임이가 스마트폰을 꺼내어 간월암(看月庵)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고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간월암(看月庵)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암자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 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간조 시에는 뭍(간월도)과 연결되고, 만조 시에는 섬이 되는 지형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이 어리굴젓을 태조에게 진상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1530년(중종 25) 찬술한 『신 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간월도만 언급되어 있고 간월암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조선 후기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엽에 폐사되었는데 1914년 승려 만공(滿空)이 다시 창건하였다.
간월암(看月庵)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암자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 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간조 시에는 뭍(간월도)과 연결되고, 만조 시에는 섬이 되는 지형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이 어리굴젓을 태조에게 진상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1530년(중종 25) 찬술한 『신 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간월도만 언급되어 있고 간월암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조선 후기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엽에 폐사되었는데 1914년 승려 만공(滿空)이 다시 창건하였다.
일몰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들은 해수욕장 모래밭을 걸어 바다까지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바다가 붉어지기 시작했지요. 꽃지 해수욕장에서 보는 일몰 광경은 황홀했습니다. 그런데 경자가 옆에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경자는 또 감격했니?"
"일구 형이랑 여기 온 적이 있어. 그때도 노을을 바라보았지."
"너를 배신하고 그렇게 빨리 가 버렸는데 애틋하고 그리워?"
"항상 그립지."
"내 생각엔 일구 형 나쁜 사람이야. 혼자서 늙어가는 이 미토콘드리아를 어찌하라고."
경자와 일구 형은 학교에서도 유명한 CC(Campus Couple)였지요. 그때는, 선배 남학생을 부르거나 지칭할 때,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들도 '00 형'이라고 불렀어요. 이 세상에서 우리 백수 장미가 지금까지 형이라고 부르는 남자가 두 명이 있지요. 한 사람은 정임이 남편 동석이 형이고, 또 한 사람이 경자 남편 일구 형이에요. 임동석 형은 손주가 셋이나 되는 할아버지가 되어 정임이와 잘 살고 있지요. 그런데 일구 형은 마흔네 살에 경자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사고였지요.
경자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일구 형과 CC가 되었어요. 선머슴 같던 경자가 우리들 중에서 제일 먼저 연애를 하리라고는 경자 자신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처음 일구 형을 만나고 나서는 더 놀랐어요. 일구 형의 하얀 얼굴과 고운 손을 보고 경자와 남녀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저는 그때까지 일구 형처럼 고운 남자를 본 일이 없었지요.
일구 형은 경자가 다니는 대학교 미생물학과 랩실에 있던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일구 형은 우리들을 만나면 항상 미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지요. 사실 저는 생물 시간에 배우기는 했어도 실제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별로 관심도 없었어요. 특히 저는 문과여서 과학은 설렁설렁 배운 것 같거든요.
그런데도 일구 형은 진지하게 유산균, 누룩균, DNA, 미토콘드리아, 아메바, 효모, 곰팡이, 그 밖에도 기억할 수 없는 많은 미생물에 대해서 알려 주었어요. 미생물이 자연환경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가 랩실에서 미생물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배양하는지를 진지하게 말해 주었어요. 훗날 일구 형이 강조하여 말했던 것들이 과학적으로 성과를 냈을 때 우리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몰라요.
일구 형은 가끔 예뻐서 그렸다는 미생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했지요. 우리가 생물 책에서나 보던 그림들이었지요. 그리고 일구 형은 미토콘드리아의 중요성과 생김새가 경자를 닮아서 특별히 더 예쁘다고 말했어요. 우리는 곧바로 경자의 별명을 '미토콘드리아'라고 붙여 주었지요.
일구 형은 참 다정하고 꼼꼼한 성격이었지요. 본인의 이름 '이일구'에 대한 자긍심이 무척 높다고 생각했지요. 자기 물건마다 '219'라고 썼어요. 그리고 교회에서 목사님이 찬송가를 고를 기회를 주었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219장을 선택했다고 전해 들은 우리는 포복절도하고 말았지요. 일구 형은 결혼식도 2월 19일에 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경자와 일구 형이 속도위반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11월에 하게 되어 매우 아쉬워했지요.
우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하게 된 경자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그리고 아기들의 옷, 장난감, 책 등 육아용품을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우리들 중에는 경자네 아기 물건이 없는 집이 없었어요. 또 일구 형이 제약회사에서 젖먹이용 유산균주를 연구할 때는 분유에 타서 먹이는 신제품 유산균을 자주 얻을 수 있었지요. 일구 형 연구실에서 연구 개발 중인 화장품도 사용 후기를 써 주는 대가로 우리가 먼저 써 볼 수 있었고요. 일구 형은 가난한 필장미에게 참 좋은 이로운 이웃이었어요.
그런데 참 좋은 일구 형이 연구실에서 단체로 간 바다낚시 대회에서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을 때, 경자는 장례식장에서 쓰러지고 말았어요. 결국 장례식은 어린 두 딸과 다른 가족들이 마무리했지요. 그리고 경자는 마흔한 살에 과부가 되었어요.
우리는 어둑해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오래오래 해변에 앉아 있었습니다.
"일구 형이 살아 있다면 우리들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을까?"
"난 태반주사."
"난 목주름을 쫙 펴주는 크림."
"예뻐지는 마법 크림."
"불로장생약."
"우리 시어머니 치매 약."
"아, 난 변비약."
우리는 바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일구 형! 우리 이제 다 할머니 됐어요!"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