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전에 초등학교 교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교감과 교장은 수업을 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수업을 안 해서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지요. 그런데, 저는 교장이 되어서도 수업을 했습니다. 제가 대단한 신념이나 특별한 기대를 갖고 수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학교에서 가장 치열하고 적나라한 교육현장이 교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교장으로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환영 받고 교실에 들어가서 제가 지원하고 관리해야 할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했지요.
또, 제가 ‘교장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교실에서 수업할 수 있었던 것은 <교장 사용 설명서> 덕분이었습니다. <교장 사용 설명서>의 첫 번째가 '저는 수업을 잘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제가 교육과정설명회에서 발표했던 <교장 사용 설명서>를 근거로 선생님들은 저에게 교실에서 수업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교장 수업'은 그렇게 저의 학교 지원과 관리 의도와 선생님들의 요청이 아름답게 부합한 것이었지요.
‘교장 수업’은 제가 마음대로 들어가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 학년의 학년교육과정협의회에서 협의한 결과에 따라서 저에게 구체적으로 수업을 요청하면 그 계획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초등학교 전학년, 전교과를 지도할 수 있는 초등 1급 정교사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행법은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교실에서 단독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거든요.
제가 교육과정의 틈새에서 일회성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교육과정 운영 계획 안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지요. 각 학년에서 선생님들이 협의하여 제가 수업할 교과-단원-차시-주제를 지정해 주면, 요청한 수업을 준비하여 학급별로 연간 최소 2시간 이상씩 수업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 그 학교는 54학급이었지요. 그러므로, 저는 연간 최소 108시간 이상 수업을 했습니다.
제가 학년별로 1주 내외에 걸쳐 수업을 했기 때문에 실제는 학기당 6주, 연간 12주 내외 기간에 집중적으로 수업을 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고 있는 수업 시수로 계산한다면, 연간 5~6주 동안은 일반 교사처럼 주당 20시간 내외를 수업한 셈이지요,
'교장 수업'에서 수업을 요구하는 교과는 도덕, 국어, 사회, 과학, 창의적 체험 활동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한 개 학년이 10학급 내외 규모여서 수업 준비는 어렵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학년별로 동일한 내용을 수업하기 때문에 한 학기에 학년별로 한 주제씩, 전체 여섯 개 주제의 수업을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수업은, 5학년의 <창의적 체험 활동>에서 '기후변화와 우리 생활'을 주제로 한 수업이었습니다. 2주간 8차시로 완성하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이론 학습과 실험 실습을 마친 뒤, 학습한 내용을 몇 달 동안 실천하도록 계획한 수업이었지요.
그런데, 제 몫이 전체 수업 시수의 절반으로 학급당 4시간씩 수업해야 했습니다. 수업 내용이 연속성을 가지는 것이어서 다른 학년에 비해 예외적으로 많은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학교장으로서 일정이 꽤 벅찬 수업 시수였지만, 제 일정을 조정하여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해 주었습니다. 수업 종료 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실천 과정, 즉 기후행동을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매우 의미 있고 만족스러웠지요. 특히 8시간의 프로젝트 수업을 마친 후, 학습 내용과 결과를 전시하고 플래시 몹(*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통해 전교생의 동참을 이끌어낸 장면에서는 함께 프로젝트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뭉클했습니다.
'교장 수업'에 대한 제 개인적인 평가는, 대단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수업 자체도 의미가 크지요. 하지만, 교실에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교장으로서 현재 진행형인 학교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제 의도를 알았는지, 학교에서 학년 말에 추진하는 학교교육과정 평가 설문조사와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선생님들은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도 모두 '교장 수업'을 '함께하는 리더십'이라고 표현하고 한결 같이 좋은 평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교장 선생님이 자기 교실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의 교실 방문이 일상적이지 않다는 방증이지요. 그런데, 제가 교실에서 수업하면서 선생님들이 차츰 편안하게 교실을 열고 수업이 아니더라도 저의 교실 방문을 반겨 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실은 담임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실천 방법이 담겨 있고, 아이들의 욕구가 넘치며, 힘과 질서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교장 선생님은 교실에서 학교 교육에서의 지원 방향을 스스로 읽어 내고, 구체적인 지원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력이 낮은 선생님들에게 제 수업을 공개하여 참관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학년별로 '교장 수업'을 마치면서제 수업에 대한 협의회를 했습니다. 해당 학년의 선생님들과 함께 제가 수업했던 내용과 교실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회의를 시작했지요. 그 자리에서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물론, 아이들, 학부모, 수업, 교실, 학교, 교육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좋았던 것은,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과 교육공동체로서 연대하고, 돈독한 관계로 성장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