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누가 봐도 무엇을 꼼꼼하게 만들거나 예쁘게 가꾸고 다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바느질이나 음식 만드는 것을 비롯하여 손으로 하는 건 뭐든 항상 대충대충 했지요. 제 결혼식날 시아버지가 입은 두루마기의 동정을 다는 바느질을 얼마나 거칠게 했는지 겉으로 삐져나온 바늘땀 하나하나가 한 뼘씩은 될 것 같았다고 제 친구가 지금도 말합니다.
제 생각에는 시어머니가 일제 강점기에 처녀공출을 피해서 열네 살에 시집왔으니, 가사를 제대로 배울 시기를 놓친 데다가 타고난 성품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칠고 투박한 시어머니의 성격과 솜씨는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사고를 쳤지요.
30년 전쯤 막내 시동생의 혼인 때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위로 아들 넷을 결혼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막내아들의 결혼을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네 아들의 혼사때와는 달리 막내아들 혼사에는, 시어머니의 대충대충 쉽게 하려는 계획이 상대편 사돈에게 번번이 부딪히고 막혀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혼사 준비 막바지에 이르러 시어머니를 큰 고민에 빠뜨린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부 집안에서 많은 것을 양보했으나, 이번 혼사가 개혼(開婚)이니 일가친척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보게 되는 이바지 음식만큼은 제대로 주고받겠다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지요.
이바지 음식이란, 혼례 때 예물로 사돈댁에 보내는 음식을 말하지요. 여기에는 ‘(음식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하다’, ‘정성을 들여 음식을 보내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시어머니의 성격대로 건성건성, 대충대충 해치울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요. 요즘처럼 잔치음식 전문점에 주문하여 보내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시어머니의 걱정이 무척 컸을 거예요.
이바지 음식은 시어머니가 아들 넷을 결혼시키는 동안 용케 비켜갔던 항목입니다. 시어머니는 네 아들의 혼사 때마다 사돈집에서 이바지 음식을 받기만 하고 한 번도 보낸 적이 없었지요. 시어머니가 이바지 음식을 안 보내도 네 아들의 처가에서는 그냥 넘어가 주었던 거예요. 그런데 막내아들을 장가보내면서 시어머니의 무례함이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신부 패물을 맞추러 시어머니가 막내 시동생과, 예비 신부를 데리고 저희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내 시동생이 운전하던 차가 앞 차에 부딪히는 경미한 교통사고를 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다친 데가 없었고, 앞 차의 범퍼만 약간 손상되어 수리비를 주고 해결했다고 들었지요.
결혼식 전날 가족들이 시집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그날 교통사고로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다고 해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요. 가장 놀란 것은 저희 부부였어요. 그날 교통사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교통사고가 났던 이튿날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특히 시어머니는 엄살이 심한 편이었는데, 저희와 함께 지낸 이틀 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었거든요.
놀란 자식들의 염려와 위로의 말에 시어머니는 대뜸 이바지음식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가 그때 교통사고가 나서 갈비뼈가 두 개나 부러졌는데, 어떻게 이바지음식을 준비하겠냐? 그래서 사돈댁에 사정을 이야기를 했더니 알았다고 해서 끝났다."
"병원은 가 보셨어요? 보험회사에서 다 치료해 줄 텐데요."
"아니, 약국에 가서 붕대 사다가 묶어 놓았어."
"갈비뼈 골절은 많이 아프다고 하던데요?"
"많이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었지."
저희 며느리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와 눈빛을 주고받았지요. 저희 며느리들은 말은 안 했지만, 시어머니의 갈비뼈 골절을 사실로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걸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시어머니 완승!
시어머니는 아들 다섯 명을 결혼시키면서 단 한 번도 이바지 음식을 보내지 않은 쾌거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그것도 근래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혼례 절차에 비중을 두었던 30~50년 전에 말입니다.
저는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을 직접 본 일은 없지만, 갈비뼈에 금이 간 환자를 옆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환자는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없었고, 엎드렸다가 일으키는 동작과 누웠다가 돌아눕거나 일어날 때 몹시 아프다고 했습니다. 또 기침할 때는 물론 숨 쉴 때조차 통증 때문에 힘들어서 꽤 오랫동안 일상생활이 불편했지요.
참 이상한 일이었지요. 시어머니는 막내며느리에게 줄 패물 때문에 저희 집에 다녀간 이후 갈비뼈 골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거든요. 시어머니는 그동안 조금이라도 아프면 곧바로 자식들에게 알리는 성격이었지요. 더구나 막내아들 혼사를 앞두고 저희들과 거의 날마다 통화하고 있었는데, 갈비뼈가 부러진 정도의 큰 부상을 말하지 않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이야기를 마치고, 굳이 옷을 올려서 자식들에게 다친 곳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속옷 위에다 붕대를 둘둘 감아서 대충 묶은 것을 보며, 언젠가 며느리들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