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교대나 사대를 졸업하면, 교사로 임용되기까지 몇 년씩 준비하기도 합니다. 저와 같은 연구실을 쓰며 기간제 교사로 함께 근무하는 두 청년도 올해 교육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임용고시를 다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후배들에게는 좀 미안한 감이 있지만, 제가 교사로 임용될 때는, 교육 대학 졸업자는 모두 재학 중에 취득한 학점 순위대로 발령이 났습니다. 무시험 검정이라고 하지요.
저는 첫 발령을 그렇게 받았고, 이후 경력단절 없이 근무하여 평생 일자리를 찾을 일이 없었지요. 그러나, 퇴직 후에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자리 찾기에 나서자 제가 ‘을’이 되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특히 학교와 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일하는 인력을 채용하는 일에서 중심에 있었던 저는 철저히 갑이었지요. 또한 교장과 교육장이었을 때는 제 이름이 계약서에서 '갑'의 자리에 쓰여 있는 갑 중의 갑이었지요.
저는 지난해 1학기 말에 퇴임하면서, 학교로 다시 가서 일하기로 하고 6월부터 여기저기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마다 요구 서류, 업무 내용, 채용 방식 등이 제각각인 데다, 불편한 것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도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인사실무편람에 기초하여 그보다 추가하는 정도가 학교마다 다른 것 같았어요.
학교들의 다른 채용 방식과 보수적인 태도는지원자로서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퇴직 전이라 근무 중이었고, 제가 지원한 곳은 근무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지요. 그래서 면접 일정에 맞추기가 어려워서 대면 면접보다는 화상 면접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미 COVID-19 확산 이후 2020년부터 원격수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업무는 물론 회의와 채용 면접까지 온라인으로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화상 면접을 요구해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학교 중에서 한 군데만 화상 면접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실감하지 못했던 ‘을’이 겪는 어려움을 퇴임에 이르러서야 맞닥뜨린 것이지요. 사실 저는 일자리가 절박하지는 않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자인 을에게 유연하지 못한 갑의 일 처리 방식에 적잖이 속상했습니다. 저는 ‘갑’으로서의 제 시간을 반성했지요. 그리고, 제가 일자리를 찾는 중에 겪고 있는 어려움을 사례로 들어 월례회의에서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습니다.
“우리는 공무원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관행적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전임자가 하던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지, 내 업무의 편리성을 위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지, 또 규정에 갇혀 원칙만 고수하며 개선점을 고민하지 않는 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자기 자신과 업무를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법과 규정의 범위에서 유연함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자신이나 업무뿐만 아니라, 업무를 통해 만나는 사람, 유관 기관, 물적 자원, 참여 업체들도 함께 유익하도록 살피며 일해야 합니다. ”
우여곡절 끝에 저는 '기초학력 협력교사'라는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한글을 해득하지 못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