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화 인간보다는 미시화 인간

내가 사랑하는 것은

by 해마


현재를 느끼며 살아야 하는데, 너무 과하게 거시 화하는 면이 있다


20살,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은 나였음에도 내가 하는 행동과 선택이 이 연애의 전체적 방향에 좋은 영향을 주는 선택인가. 생각하며 연애를 했다. 풋풋한 친구들의 연애고민을 듣고 카운슬러처럼 해결책을 주는 게 내 소소한 삶의 재미였다. 첫 연애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땐 장점인 줄만 알았는데, 나는 너무 멀리서 전체를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한눈에 파악될 때까지 더 높게 더 멀리 올라가서 내려다본다. 그만큼 세세한 것들이 보이지 않고 오감이 둔해지는 기분도 든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 숲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많이 헤맨다. 답답해한다. 정밀화를 그리기에는 실력이 좋지 못하다.


최근 챗GPT와의 토론(나에 대한 분석)중 지피티가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분석이 있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해상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인데, 이해하려고 해 봐도 저 AI의 저의(라는 게 있을 리 없지만)를 파악할 수가 없다. 해상도가 높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민하다는 뜻일까? 지피티에게 물어보니 “생각·감정·상황을 인식하는 정밀도를 비유적으로 말한 거야. 쉽게 말하면 사람이나 상황을 볼 때 픽셀이 촘촘한 사람이라는 뜻에 가까워.”라고 한다. 나는 평생 내가 둔하다고 믿고 살았기 때문에, 조금 의외다.


나는 나와 몇 만 일을 함께 했는데, 요즘은 내가 알던 내 세상이 무너진 기분을 종종 느낀다. 나는 거울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고 원하는 자아상으로 거울을 가리고 있었던 걸까? 정합성 집착녀로선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는 일이다.


오랜 수험생활을 보내며 내가 회복탄력성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1년을 준비한 시험의 결과가 아쉬워도, ’ 올해 공부가 모자랐나 보다‘(실제로 모자랐음) 생각하고 말았다. 남들은 억울해하고 시험이 너무 어렵고 불의타가 많다며 욕할 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바로 다음 1년을 준비했고 내가 오랜 수험생활에도 밝게 지내는 것을 보며 주변에선 모두들 대단하다며 입을 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내 인생전체를 너무 멀리서 관망했던 듯하다. 1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것. 내 점수가 모자랐다는 것에 현실감을 생생히 느끼면 괴로우니까, 아프니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대신 망원경을 선택했을지도. 내가 알던 나와 진짜 나는 많이, 아주 많이 다른 것 같다. 그 격차를 좁혀나가야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양 극단에 있어서 어떻게 좁혀야 할지 모르겠다.


취직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점은, 일을 할 때도 자꾸 망원경을 들이민다는 것. “이 일의 목적이 뭔가요?” “결국 ~를 위해서 하는 거네요?” 등과 같은 질문을 자주 하고, 자꾸 숲을 보려 해서 힘들었다. 나무도 그리지 못하면서 숲을 그리려 하면 마음만 앞서고 능력은 안되어 스트레스 지옥이다. 자꾸 죄송할 일이 생기고, 내가 저지른 실수를 내가 수습할 수 없는 위치이고 등등. 여태 각종 알바로 다져와 야무지다고 생각했던 자화상도 산산조각 났다.


이 쯤되면, 거시화 인간의 장점이 있을까 싶다. 나는 그래서 미시화 인간들을 사랑하는 지도. 현실을 온전히 느끼고 눈앞의 것에 집중하는 모습들이 사랑스럽고 순수해 보인다. 나무가 이루는 숲의 모양까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인 것 같다.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생각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