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셔지는 나, 정신과 검사받는 나

정신과 입원일지

by 해마


약을 세게 처방받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자다가 소변 누고 싶은 감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다. 오늘도 자다가 대참사가 날 뻔했지만 겨우 알아채고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왔다. 약이 너무 많아서 약만 먹어도 물을 잔뜩 마시게 되는데 이걸 어쩌나 싶다.


병원의 아침은 정말 일찍 시작된다. 눈을 떴더니(떴다기보다 간호사님이 깨웠음) 밥이 떡하니 나와있고, 나는 눈곱도 못 뗀 채 심전도 검사와 정량화 뇌파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개쫄보답게 ‘아파요?‘를 물어본다. ) 전혀 아픈 건 아니었음) 미용실에 온 듯 검정망토를 두르고.. 그물처럼 생긴 모자(물에 젖어 축축했음) 얼굴전체에 뒤집어쓰고 눈감고 5분. 눈뜨고 빨간 점을 보며 5분. 있으라 했다. 빨간 점이 나 같다고 생각했고 없어졌으면 했다.

그림을 보며 외우라고 했다. 시간을 하도 줘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담배 나비 온도계는 누군가의 팔에 타투로 있다고 상상해 외웠고 거북이 서류가방 창문 단추는 어딘가 허술한 직장인이 서류가방을 들고 거북이처럼 느리게 준비하다가 단추가 떨어진 것도 모르고 창문밖으로 급히 나가버리는 상상으로 외웠고 꽃 입술 쥐는 그냥 꽃입쥐. 이렇게 앞글자를 따서 외웠다. 무튼 이건 자신 있었다.


숫자를 불러주며 거꾸로 외워라, 낮은 수부터 말해라 조건이 많다.


또 내가 무한도전 패널이 된 듯 목민심서의 저자, 이탈리아의 수도 같은 간단한 상식문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에 두 자리+세 자릿수 더하기 까진 괜찮았는데 세 자릿수 +세 자릿수 되니까 눈감고 암산이 수월하진 않아서 좀 틀린듯하다. 덧셈에서 틀리다니;; 수학 1등급의 위상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어젯밤엔 불안해서 (혹은 자해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욱) 자해를 몰래했다. 흠 손톱으로 팔을 잔뜩 괴롭혀서 살이 벗겨졌다. 근데 이것도 자해로 칠 수 있나? 피도 안 났는데.


내 자리는 창가인데 창이 너무 크고 밖이 훤히 보이는 게 싫어서(공간이 좁을수록 좋아한다. 원래는 좁은 공간을 견디지 못하던 나였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블라인드를 죄다 내려버렸다.


G가 업무인수인계도 받을 겸 겸사겸사 들렀다. 그리고 와서는 전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이 사태를 전부 아는 G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대표님께 내가 플랫폼에 글을 올린다는 점. 그리고 출간제안을 받았으나 기획단계에서 무산되었다는 점을 대표님한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나는 이제 공식적인 실패자다. 그리고 나에게 ‘다들 그렇게 살아’를 이야기하며 ‘파이팅’ 했는데 다들 이렇게 산다면 나는 왜 이리 힘든 건지 모르겠고, 파이팅이라는 말에는 진이 다 빠졌다. 힘이 들 땐 더 더 힘들게 살고 있는 본인을 보라고 했다. 나는 타인의 불행을 위로삼아 힘을 내고 싶지 않다. 힘도 나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 그 누구도 나를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상관없다고 했다. 그냥 내가 실패자인 게 팩트고, 내가 나를 싫어한다고. 혐오한다고. 까지 말하려다 그것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G는 우울증을 잘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악의 없이 나를 칼로 푹푹 쑤신다. -맨날 쑤셔지는 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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