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이다 6_엄마들은 강하고 지혜롭다는데

25년 7월 8일

by 해마

감정이나 생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글로 다 토해버리고 싶은 때가 있다.


며칠새 많은 일들과 많은 감정과 생각이 나를 자꾸자꾸 끌어올린다. 높은 곳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장 수면에서 위태롭게 찰랑거리는 느낌.


이 느낌의 근원지는 아마 우밍아웃이지 싶다.

정확히 말하면 아웃팅이다. 나는 말하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으므로.


원치 않게 응급실에 오고 입원을 하게 되면서 보호자로 동반한 B가 가장 먼저 나의 우울증을 알게 되었고, 발진의 원인이 “약”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에 엄마에게도 어쩔 수 없이 툭 말하게 됐다. 말하고 싶진 않았다. 입원해 있는 지금도 엄마가 충분히 걱정에 걱정을 하고 있을 거라서.


맘 편한 게 최고인데 걱정을 자꾸 주는 딸은 최악이다.


어제까지는 퇴원을 늦추고 싶어서 (분명 일주일 가까이 입원해 있었는데 왜 하루 이틀 있던 것 같고 퇴원날이 코앞인지…?) 밤약도 몰래 안 먹고(아주 초딩다운 발상이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피검사를 안 했다) 쌩쑈를 했는데 ㅎ


오늘 아침에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도시며 자가면역성 간염 양성수치가 나와서 간조직을 떼서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하셨다. 졸지에 시술? 까지 하게 됐다.


통증을 잘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아픈걸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얼마나 아픈지 호오들갑을 떨었다.(물론 맘속으로) 그리고 금식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도 아주 중요한 주제다. 막상 밥이 나오면 입맛도 없고 맛도 없어서 거의 다 버리지만 “못”먹는다는 것에 아주 반감이 든다.


하필이면 엄마랑 통화 중에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셔서 전화를 미처 끊지 못해 내가 어젯밤에 토한 것도 엄마가 듣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자가면역성 질환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가 또 자책할까 봐 아주 걱정이 된다.


나는 엄마를 지켜줘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라고 수없이 이야기하고, “엄마가 병나는 거 아냐?” 하면서 최대한 가볍게 말해도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점점 잠기고 무거워진다.


나의 건강이야 아무렴 상관없지만 다른 이유들로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난다. 내 눈물받이가 되어버린 M의 티셔츠는, M의 체취 보다 내 눈물자국이 훨씬 많이 담겨버렸다. 이 티셔츠 조각과 집에서 데려온 오랑이가 없었다면 마음의 구멍을 무엇으로 급히 막았을까.


G에게 카톡이 왔다.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기댈 곳 중 하나이기 때문에. G에게 엄마가 걱정된다고 좀 들여다봐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엄마들은 강하고 지혜롭다”

라고 하셨다. 엄마 걱정은 말고 나 회복에만 신경 쓰라고.


이 말만큼 나에게 위로가 된 말이 있었을까. 그래.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이 세상을 견디며 살았는데 내가 누굴 걱정하냐. 싶다가도 내가 엄마의 평안에 마이너스를 긋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힘들게 한다.


어제는 외할아버지 제사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중인 때 내 인생 최악의 아픔(코로나+독감)을 앓았다. 아파서 “정신이 없다”는 이런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한 외할머니 장례식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기에 외할아버지 상중엔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을 이끌고 산행도 불사 않았다.


이번에도 공교롭게 외할아버지 제사 때 아프다.


수험생활 중에 외할아버지의 걱정과 기대에 “부담스럽다”고 한 못된 손녀가 받는 벌일까, 아니면 쉬어가라고 할아버지가 나를 잠시 앉혀주시는 걸까. 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내 마음이 편하기에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할아버지가 주시는 벌일리는 없다. 할아버지는 그럴 리 없으니까.


오늘의 토해냄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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