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5일
아프다.
원인 모를 알레르기와 함께 간수치와 여러 수치의 상승으로 입원을 했다. 최강철인인 나에겐 응급실이나 입원은 생소한 일이다. 심지어 가벼운 병부터 아주 무거운 병까지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황당하다.
입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고마운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만약 아주 무거운 병이라면 치료 없이 깔끔하고 빠르게 죽고 싶다. 모두에게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다.(이 이야기를 L에게 했다가 꿀밤을 맞았다 ㅋㅎ)
컨디션이 나쁘고, 알레르기 때문에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게 있다. 사람들의 애정으로 둘러싸인 내가 이리도 공허한 이유가 뭘까. 마음이 뻥 뚫린 것 같다. 후후 불면 구멍이 뚫리는 것은 비단 솜사탕뿐만이 아닌가 보다. 감정하나 컨트롤하지 못해서 휘둘리는 내가 볼썽사납다.
사람들을 많이 만난 후에 오는 공허함을 견디기 힘든 시기가 또 슬며시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의 애정을 느낄수록 내가 애정을 주는 사람은 한정적인 것을 느낀다. M은 귀엽게도 반찬을 바리바리 해서 가져왔다. 맛없는 병원밥에 한 줄기 빛이다. M의 옆에 앉아있는데 향기가 너무 좋아서 마음이 안정됐다. 당장 티셔츠를 벗어놓고 가라고 했다. 그걸 또 순순히 벗어주는 M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다.
M의 티셔츠를 입혀둔 인형에 코를 박고 안정을 취해본다.
나의 스트레스는 모든 것을 명확히 하려는 나의 욕심 때문이며 잘해야 한다는 나의 자의식 과잉 때문일 것이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게 불완전한 나다. 나의 불완전성은 도달추구미와 현재위치 사이의 괴리를 좁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온다.
L을 보고 싶었었는데 오늘 입원을 핑계로 잠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L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정말 눈물이 많이 났다. 눈물 젖은 복숭아 맛이 기깔났다.
간만에 본 L의 표정이 안정적이라서 보기 좋았다. L과 대화하면 머리 말고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머리로 한 번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깊은 이야기도, 초딩같이 깔깔거리는 이야기도.
L은 여전히 귀여웠고 초가을의 바람처럼 온기도 시원함도 느껴져 편안했다.
또 병문안을 와준 A와 S와 B와 J, H, M 덕분에 저녁시간도 잊은 채 깔깔거렸다.
입원의 좋은 점은 혼자 있을 수 있단 것. 외롭지 않게 적당한 간격으로 나의 혈압안부를 물어준다는 것. 표정을 일부러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온종일 브래지어를 벗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읽고 싶던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단 것. 연락을 좀 안 받아도 괜찮다는 것. 보고 싶은 사람을 불러서 볼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것. 장점이 꽤 많다. 옆자리 할머님의 토크쇼를 피해 다른 공간에 와있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시간이 넘쳐나는 김에 브런치스토리에 열심히 글을 올려볼까 한다. 그득 담겨 찰랑이는 시간은 퇴원과 동시에 끝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