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찰랑이다 4_나의 뮤즈

25년 6월 19일

by 해마

30년 간 흘리지 않은 눈물들이 몸속에 쿡 처박혀 있다가 이제야 콸콸 나오는 것 같다. 이래도 눈물이 나고 저래도 눈물이 난다. 우는 것을 "질질 짠다"라고 표현하던 과거의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지금 내가 찌질하게 질질 짜고 다니니까.


또다시 집에 가기 싫어지는 감정이 슬며시 찾아온다. 2년을 넘게 살았는데 내 집 같지가 않다. 편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본가에 가면 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본가에는 애진즉 내 방은 없어졌고 3개의 방 중 용도가 없어진 하나는 드레스룸으로 둔갑했다. 막냇동생 방에서 자기도 하지만 이미 내 체취가 사라지고 동생의 테스토스테론 향만 남아있는 방은 내 방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나는 학창 시절 항상 뮤즈가 있었다. 친구는 단연코 아니었고 선후배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업의 선생님이 나의 뮤즈가 되곤 했다. 친구가 전학 갈 때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선생님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실 때는 찾아가서 울며 붙잡기도 했다. 특히 나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선생님들을 좋아했는데 가장 마지막 뮤즈는 10년 전에 머물러있다.


J에게 DM이나 메일을 보낸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면 글이 참 잘 써진다. J를 안 지 10년이 되었지만 인스타로 힐끔힐끔 본 J는 여전하다. 여전히 멋있고 여전히 듣고 싶은 수업을 한다. 20대 초반의 나는 여느 또래와는 다르게, 같이 다니는 친구들과 꼭 같은 교양 수업을 들어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찾아들었다. 내가 고른 교양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들이 있었을 뿐. 나는 친구들보다 교수님과 수업(혹은 간간히 그 수업을 같이 듣는 훈남)에 관심이 있었다. 오랫동안 원하던 전공을 선택해서 진학했지만, 왠지 전공수업보다 교양 수업들에 마음이 갔다. 건축학, 인문학, 역사, 자연, 문예창작 등 많이도 들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내가 4년 내내 들은 수업이 있다면 J의 수업이다. 필수교양으로 1학년 때 수업을 들은 뒤로 J의 수업만 잘 소화시켜도 내 등록금의 절반은 제 값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의 여린 줄기를 두껍게 두껍게 성장시켜 주는 수업들이었다고 장담한다. 그건 깨끗하고 예쁜 열매를 맺기 위해 치는 농약과는 상당히 다른 결이었다. 오히려 퇴비에 가까운 수업이었다(POSITIVE). 어쩌다 보니 러브레터가 된 것 같다. J가 이 글을 볼 일은 없지만 그래서 더 솔직하게 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엔 J의 책을 읽고 내가 몰랐던 J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겉보기에 '실패담'인 그 이야기들로 인해 J를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냐 하면, 물론 그렇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깊은 분이었음을, 훨씬 더 용기 있는 분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암만 뮤즈로 생각한대도 J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날카롭게 나를 베기도 한다. J는 그 책으로 인해 내가 위로받기를 바랐던 것 같다. 아쉽게도 위로보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졌다. 나약한 내가 보기엔 너무 단단한 사람들의 책이었기 때문에. 아마 이건 나의 정신상태가 문제이리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찰랑이다 3_깔끔히, 단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