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1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꼽으라면, 다른 사람이 내 걱정을 하는 것. 징징대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는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악의 인간이다.
나를 걱정하는 H로부터 매일 전화가 온다. 감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나도 따라 감정버튼이 눌릴까 봐, 괜히 틱틱대며 전화를 받는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나의 병을 아웃팅 당한 것이 체감되어 싫다. 그래도 밝은 내 목소리를 듣는 것과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H의 걱정을 눌러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받는다.
나 스스로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성문을 꼭꼭 닫아놓은 아이였을까. 독립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센 척이었다고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털이 복실 거려 포근해 보이고, 못생겼다. 포근함에 안겨있고 싶고, 못생김은 귀여운 포인트로 다가온다. 예전엔 트인 공간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폐쇄적이고 작은 공간을 좋아한다.
내 속의 구멍을 외부로부터 메꾸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이다.
외부로부터 뚫린 구멍이 아니므로.
그럼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밖에서 안으로, 안으로 쑤셔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