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까?

그만 2

by 해마

그럴 때가 있다.


나 왜 살지? 싶을 때가.


아침에 힘겹게 눈을 뜰 때.

큰 실수를 했을 때.

작심삼일 할 때.

내가 싫을 때.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멍청하디 멍청한 실수를 한

내가 싫다.


혼나는 건 아무렇지 않다.

잘못했으니 당연한 것.

주변의 시선도 아무렇지 않다.

거울을 보기가 싫을 뿐이다.


자존감이 높은 것과 자기혐오는 별개이지 싶다.

혹은,

내가 엄청난 연기자이거나.


나는 나를 혐오하는데,

주변에선 자존감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낸 L의 일터에 놀러 갔다.

신기하고, 멋있고, 아주 조금의 부러움도 있었다.

나에게 사소한 행복을 전해주는 L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두었다.


예컨대, "오늘은 비싼 커피 마시는 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칼퇴하는 날! 여의치 않다면 ~~ 노래를 들으며 퇴근하기"

와 같은 챌린지를 적어 여기저기 숨겨두었다.


쪽지를 발견하고

비싼 커피를 산 후 인증샷을 보내온 L은

참 소담스럽다.


L과 잘 놀고 헤어지던 때,

L이 "오늘 정말 고마웠어, 힐링했어"

라고 하길래

나는 "왜?"라고 물었다.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라

정말 왜? 가 튀어나왔다.


L은 나에게 뭐가 고마운 걸까?

내가 L에게 항상 고마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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