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진료일지
선생님이 빌려주신 책을 다 읽고 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미뤄두었던 책을 호다닥 읽었다.
빌려주신 책 제목은 ”나는 나를 아직 모른다 “.
책을 휘리릭 읽고 이게 우울이 맞는지 의심하는 과정마저 우울의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 모든 생각의 메커니즘은 우울증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선생님과 진료 중엔 책에 대해서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내현적 자존감과 외현적 자존감의 격차가 큰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문득, 엄마랑 아빠가 죽을 때 같이 죽으면 엄마랑 아빠가 힘들일은 없지 않을까? 혹은 가족이 다 같이 죽을 수 있다면..? 적어도 나 혼자 죽었을 때 우리 가족이 힘들일은 없으니까.라는 생각을 했다.
위험한 생각인 건 안다. 사이코패스 같은 생각인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냥… 나 때문에 누가 아프지 않길 바라는 비뚤어진 마음 정도라고 해 두자. 이렇게 쓰고 나니 정말 정신병자 같다 ㅎ.ㅎ
또 한편으론 일단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거하게 하나씩 하고, 죽어야겠다. 하는 아무도 바라지 않을 것 같은 자기 위안식의 자살 방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매번 회사에서 사람들이랑 있을 때는 가면을 잘 쓰고 있는데, 혼자 있게 될 때, 퇴근할 때 등 그 순간마다 감정이 확 식으며 가라앉으면 그게 참 힘들다.
진료를 보고 나면 어떤 날은 개운하다가도 어떤 날은 기분이 더 가라앉는다. 선생님은 말로는 “좋네요~”라고 하시는데 약은 자꾸 늘어난다. 그냥 솔직히 말해주시면 좋겠다.
사실 요즘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매번 똑같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선생님도 매번 똑같은 이야기 들으니 지겨울 것 같다.
이쯤 되면 병원에 가는 텀을 좀 늘려도 되지 않나? 싶은데, 선생님은 뭔가 걱정하시는 것 같다. 전엔 그런 말씀을 안 하셨는데, 요즘은 “걱정되니까, 진료날 전이라도 힘들면 병원에 전화하거나 찾아오세요”라고 하신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악화되고 있는 걸까?
나는 이 우울증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내 기분에 당황스럽진 않으니.
진료가 끝나고 약을 타오면 괜히 환자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진다.
진료 후에 기분이 가라앉으면, 계속 걷는다.
술집에 가서 혼술을 하고 싶은데 그건 참 난도가 높은 거라서
(전에 혼술 하러 갔다가 바텐더랑 옆자리 사람이 자꾸 말을 거는 바람에 괜한 감정노동만 하다 온 이후로 혼술은 기피한다.)
맥주를 한 캔 사서 동네 공원에 앉았다. 사람도, 강아지도 많았는데 나만 다른 세상인 것 같다.
강아지들은 생기가 넘치고 강아지들을 따라다니며 뛰고 웃는 사람들도 다가온 여름 저녁을 즐긴다.
나는 아무래도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종종 술친구가 되어주는 K에게 전화를 걸어 K가 있는 술자리에 갔다.
술자리가 즐거웠다기보단, 그냥 집에 안 갈 수 있어서 좋다.
필름이 끊긴 채로 K에서 잤다. 아침에 어떤 정신으로 출근을 했는지 모르겠다.
빈속에 술을 들이부어서 그런지 속이 너무너무 아팠다. 토를 하다가 내 위장이 다 입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막상 몸이 아프니 ’ 살려줘..‘가 절로 나오는 게 웃기다.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위경련이라고 하며 반차를 내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도 골골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 언니 이제 20살 아니야;;‘라는 B의 말에 공감하며 누워있었다.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K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 자해하는 것까지 모두 말했다고 한다. 나 자신이 또 싫어지는 순간이다.
정신과를 다니는 거나 자해를 하는 것은 정말 말하고 싶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근데 내 입으로 술술 말했다니. K는 정말 안타까워했으며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줬다. K에게 그런 감정을 옮기는 게 싫다. 즐겁고 가벼운 술자리이고 싶었다.
그냥 하루 저녁시간을 가라앉은 채 보내지 않아도 되는 정도를 원했는데..
술만 마시면 정신이 어떻게 되는지 실수. 실수. 또 실수다. 술만 마시면 실수다 그냥.
아니, 이쯤이면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침에 늦잠을 자서 지각할까 봐 선생님께 밤 약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절반만 먹어도 될 것 같다고. > 실험결과 수면의 질은 좀 안 좋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