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가운데서

정신의학과 방문일지

by 해마


눅진한 공기가 몸을 감싸도 괜찮다.

쨍한 햇살보다는 습기가 가라앉은 기분과 페어링이 더 잘 되는 것 같다. 오늘같이 기분이 안 좋은 날 진료를 보는 건 꽤 행운이다. 눈물이라도 터트릴 수 있으니.


이제는 지겨워서 끊어내고 싶다 이 우울을.

이 우울감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님을 느끼는 매 순간 잘도 무너진다.


선생님은 단단해지는 과정이라고 하시는데,

내가 느끼는 (대부분 형이상학적인) 바는

단단했던 나에게 속에서부터 금이가고 있다는 것.

속부터 비어 가고 있다는 것.


좀 더 뻔뻔해져도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 선생님은,

내가 밖에서 뻔뻔하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듣는지 모르실 거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에 눅진한 공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 일지는 현실과 한 달여간의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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