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

정신의학과 진료일지

by 해마

자꾸 선생님께 징징대게 된다.


오늘 병원에 가는 길에 처음보다 많이 나아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선생님께 드릴 쿠키를 사갔다.


진료시작때 드리면 왠지 뇌물 같은 느낌이라 기다렸다 드렸다.


오늘은 새로운 이야기를 좀 했는데, 나의 잘못된 행동과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걸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든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누구도 상처 주지 않고 끝내는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것.


선생님은 수도꼭지를 먼저 막아두고 나서 생각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내 머릿속은 계속 이 망가진 수도꼭지를 어떻게 없애느냐의 문제다. 흔적도 없이 없애고 싶다. 수도꼭지를 잘 쓰던 사람에게서도, 수도꼭지를 꽉 안 잠그던 사람들에게서도, 수도꼭지에 물이 튀었던 사람들에게서도 영원히 잊히고 싶다. 그게 깔끔하니까.


선생님은 계속 일단 물을 막자고 하시고, 나는 계속 물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이라고 했다.


답답해하시는 게 느껴졌다. 나도 이따구로 흘러가는 내 사고방식이 답답하다. 이제 예전처럼 돌아가는 건 포기했다. 그냥 살아있으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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