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진료일지
이번 주는 해저에서 소용돌이가 쳤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생님을 만나면 또 수다쟁이가 된다.
어쩜, 단 하나도 묵직한 게 없다.
오늘은 감정이 메말라서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눈물을 잘 빼시는지, 염전이 따로 없다.
우울에 인과가 없는 게 힘들다고 했더니
이유 없이 힘들어졌으니 이유 없이 괜찮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뿌리 깊은 우울이 아니라서 괜찮단다.
처음에는 분명 괜찮아지는 데 한 달 본다고 하셨다. 한 달을 넘어선 시점부터 좀 불안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선생님은 괜찮아지고 있다고 하시지만 약은 매주 늘고 있고, 나는 점점 늪으로 빠지는 것 같다.
선생님은 “그래도, 생활하다가 즐거운 일도 있고 웃는 일도 있으면 그런 밝은 색들이 어두운 색 사이에 하나 둘 찍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전체 색이 점점 변하는 거고요.”라고 하셨다.
밝은 색이 찍혀도 매번 어두운 색으로 덧칠하기 때문에 납득은 안 갔다.
내가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고 하니(매 진료마다 말하는 것 같다. 근데 진짜다. 거의 정반대였음)
지금이 우울한 시기라서 양면성을 가진 모든 것들을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라고 하신다.
나도 안다. 내가 부정적인 것. 그렇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나.
일주일간 나를 꽁꽁 묶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과 행동들을 털어놨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과의 관계가 끝난 것은 객관적으로 잘 된 일이라고 하셨다. 그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관계가 늘 그렇듯 끝을 내도 복잡한 감정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선생님이 약을 더 늘이긴 좀 그렇다고 뇌파치료(?)를 조심스레 권하셨다. 집에 가서 검색해 보고 찬찬히 치료를 찬찬히 고민해 보라셨다.
이름만으로도 좀 거부감이 들었다. 왠지 진짜 정신병자가 된 것 같고..? 그래도 아픈지, 얼만지 가 중요했기에 바로 여쭤봤다.
“그거 혹시 아파요?”
“ㅎㅎ아니요. 정신과에서 아픈 치료는 없어요.”
“얼마예요?”
“매주 한 번씩 받는 사람도 있고 주 3회 받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병원에 자주 오시기 힘드니까 조심스레 권해드리는 거예요. 부작용이 없으니까. 한 번 치료받는 데 5만 원 정도 들어요.”
“그럼 못하는데요! ㅎㅎㅎㅎ”
병신 같은 정신머리 한 번 고쳐보겠다고 매주 오만 원이라니. 절대 말도 안 된다.
매주 상담을 포함한 진료를 받는 바람에 이만원 씩 깨지는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
차라리 뚜드려 맞아 정신개조를 받거나, 동굴로 들어가서 쑥과 마늘을 먹던지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살이 2 키론가 쪘다. 몸무게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살이 훅 빠진 뒤로는 1키로만 쪄도 짜증이 난다.
예전에 알코올 관련된 약을 먹었을 때 입맛이 싹 사라졌던 게 생각났다. 선생님한테 비상시약으로 그걸 달라고 했다.
술을 자주 마셨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처방해 주셨다.(술을 일주일간 많이 마신건 사실이니 거짓말은 안 했다.) (선생님 또한 마구잡이로 약을 처방해 주시는 건 아니니 걱정말길)
또 요즘,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서 불편한 걸 이야기했더니 손떨림을 잡아주는 약도 함께 처방해 주셨다. 검색해 보면 항상 그냥 항우울제인데 저마다 특징이 있나 보다.
그나저나 약 이름들은 왜 이렇게 어렵고 긴지. 매번 기억도 못하겠다.(장기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님)
자꾸 괄호를 치는 걸 보니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나 보다. 찌질하다.
진료를 받은 날은 항상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감정적으로도 많이 다운되고, 집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집에 가서 B를 웃으며 볼 자신도 없기에 밖에서 방황한다. 날이 더워져서 밖에 있기가 좀 수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