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니까, 싫다.

정신의학과 진료일지

by 해마

일정과 병원진료시간이 맞지 않아서 3주 만에 병원에 갔다. 3주간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나에게 실망한 하루도, 그럭저럭 잘 지낸 하루도 있었다.


하루들이 쌓여서 3주나 흘렀지만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


일상보단 악몽들이 깊이 박힌듯하다. 꿈은 흘려보내야 하는데 5살 배기처럼 잠에서 깨고도 인형을 끄러안고 가쁜 숨을 진정시키기 바쁘다.

밤약이 이제 잘 안 듣는 것 같다.


선생님과 심리적으로 좀 멀어진 걸까, 별로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뭐든 이야기를 해주셔야 한다고 해서 한 두 개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진료를 봐서 그런지 말이 두서없이 나왔다.


떠오른 기억들을 돌다리 삼아 띄엄띄엄 이야기를 건넜다. 그간 나에 대한 자각을 잘근잘근 밟아 봉인해 뒀는데,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니 ‘아 내가 잠깐 잊고 있었구나 ‘ 싶었다. 나의 실체를 마주해야 하는 진료시간이 괴로웠다. 전에는 명확해서 그 괴리가 힘들었다면 지금은 온통 뒤죽박죽이라서 힘들다.


지금 상태는 딱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겠다.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왜 자꾸 머리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지 알 수 없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병적인 습관성 행동과 ’나‘라는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르신 듯하다. 병적이라고 해도, 습관성 행동이라고 해도 어쨌든 그 행동을 하는 것도 ’나‘라는 존재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결국 저인데, 어떻게 분리해서 생각하나요..”

라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서 선생님이 힘드실 것 같다.


선생님과 논쟁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이해가 안 가서 여쭤보는 거다.

선생님은 want와 like를 잘 구분하라고 하셨다.


아, 병원은 6시에 진료마감이라고 적혀있는데 선생님은 내 진료예약을 항상 6시에 잡으신다.

감사하기는 하지만, 빨리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마냥 편하진 않다.


밖에서 뻔히 나의 진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시는 간호조무사님까지 마음에 걸리면 병적인 걸까.


오늘은 안 울 것 같아서 휴대폰만 달랑 들고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어김없이 휴지를 잔뜩 손에 쥐고 나왔다.


참…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땀이 맺히는 습도와 온도가 찾아오니 긴팔을 입고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반팔을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여름용 레이어드 긴 팔티를 여러 장 샀다.

좀 덜 덥고 팔도 가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닐까 애써 나를 달래며.


요즘은 나의 생각과 행동이 상식적인 건지 헷갈린다. 내가 예민한 건지 아니면 주변이 무례한 건지 판단이 안된다.


그럼에도 꾹 참는 성격은 못되는지라 톡쏘며 받아치긴 한다. 겉보기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 같지만, 나는 안다. 내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을.

주변에서 참아주고 있는 것을.


약이 자꾸 바뀐다. 다음 주 진료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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