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가 그리 공허해서

정신의학과 진료일지

by 해마

이번 주는 꽤나 고된 일주일이었다.

잠잠했던 자해도 하고, 모든 것이 귀찮아졌으며

내 삶에서 빠져나간 부분들을 메워보려 폭식도, 쇼핑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과하게 했다.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그렇게 파도에 휩쓸려 지냈다.


오늘 병원에 가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선생님과의 진료 이래 가장 편안한 대화였다.


선생님 말씀이 고깝게 들리지도 않았고, 끝날즈음엔 한바탕 서로 웃으며 대화하기도 했다.

역시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남이 볼 땐 내가 말이 많아 보이겠지만 내 대화의 패턴은 항상 질문이다.

질문을 하고 질문에 대한 답에 또 질문을 하고. 궁금한 게 많아 그렇다. (관심사 혹은 관심 있는 인간에 한정되긴 하지만) 대화주제도 내가 되는 법이 잘 없는 것 같다.


각설하고,

오늘은 선생님이 첫 질문으로 “꿈은 좀 어떤가요?” 라며 구체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주셔서 좋았다.

왜냐면, 밑도 끝도 없이 “어땠나요?”라거나 “지난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와 같은 말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신 덕에 오늘은 감정은 많이 덜어낸 채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예컨대, 흥미로운 일들이 사라진 점. 나의 추악한 모습을 누가 알기 전에 깔끔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 뉴스에서 안타깝게 죽은 여느 가장이나 어린 학생을 보게 되면 내가 대신 죽었다면 좀 더 합리적이었을 텐데.라고 생각한다는 점 등등


난 오늘 선생님 말씀에 동의하며 정리해서 되묻는 여유까지 보였다. 결코 지난주가 괜찮았던 건 아니다. 선생님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고뇌하시고 걱정하셨다. 내 상태가 괜찮아진 건 아니지만 선생님과의 대화가 싫지만은 않은 것이 좋았다. 선생님에 대한 내 마음이 조금 열린 것 같아서.


선생님은 항상 자신의 사례를 들며 공감해 주시고 안심시켜 주신다. 오늘은 어느 때보다 공감이 잘되었다. 선생님이 자신의 사례에 녹여낸 메시지도 해석할 수 있었다. ‘약을 처방해 드리지만, 약에 의존하면 안 되고 의지도 함께 가야 한다는 것.’ 그게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폭식을 하고 나면 다음날 늘어있는 체중에 짜증이 나고 억지로 억지로 헬스를 다녀오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내가 한심해 미칠 것 같다. 선생님께 제발 폭식 안 하는 약 좀 달라고 했다.


무어가 그리 공허한지,

나는 음식으로 혹은 물건으로 어떤 구멍을 메꿔보려는 건지. 또 나를 모르겠는 일뿐.


선생님과 책에 관한 대화도 조금 했는데, 책은 여전히 읽냐고 물어보셔서 요즘은 더 많이 읽는다고 말씀드렸다. 그건 좋다고 하셨는데, 사실 좋은 신호는 아니다. 내가 책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책 외에도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는 뜻이고, 책에 파묻혀 지낸다는 것은 책으로 끝없이 도피 중이라는 뜻이다.


킬링타임용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계발서는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뻔한 글 나도 쓰겠다’ 싶다. 오로지 (타칭) 우중충한 분위기의 소설 혹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철학서 혹은 고전서를 좋아한다. 추상적으로 생각할 게 많은 것들. 내가 사랑하면서도 나를 옥죄는 것들이다.


명제 1. A는 B다

나는 나를 옥죄고 있다.

명제 2. B는 C다

나를 옥죄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만 가능하다.

결론. A=C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결론에 오류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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