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진료일지
진료를 가기 싫은 날이었다. 비도 왔고 일주일간 나에게 실망할 일들이 많았고 몸도 안 좋았다. 그래도 어찌하리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도, 해야만 하는 곳도 진료실 안인 걸.
며칠 내 발진으로 고생을 했다. 여름에 발진이라니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몸에서는 열을 뿜어내고 간지럽고 미칠 노릇. 전날 과음한 탓인지, 약물 발진인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지, 전날 쓴 파우더시트(이건 여러 이유 중 하나가 확실함) 때문인지 영문도 모른 채 처음 겪은 현상에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30년 간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왜 불행은 나만 안 비켜가"라는 생각을 했고 그걸 말로 뱉었다. 이런 내가 아직도 생소하다. M은 생각보다 심한 내 몸 상태에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나를 안심시키려 말하고 있지만 표정이 가라앉아있음이 느껴졌다.
피부과에서는 약물 발진이 의심된다고 하며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으면 대학병원에 가라고 소견서까지 써줬다. 안 그래도 심란한 맘에 기름을 와악 부은 격이다.
약물이라 함은 내가 먹는 항우울제 이므로 우울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렇게까지 불행을 가져오는구나 싶었다.
정신과 약이랑 피부과 약을 동시에 먹으니 머리가 팽팽 돌아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실수 연발이었고 죄송할 일 투성이었다.
피부과 약이 잘 안 듣는 것 같아서 내과에 갔더니 음식 알레르기와 면역력 저하를 이유로 꼽았다. 차라리 그렇게 믿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 그렇게 믿었다. 피검사 결과 알레르기는 거의 없는 초 건강 인간인 게 탄로 났지만 이 무렵 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피 몇 방울, 검사지 2-3장으로는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몸이다.
알레르기는 물려받지 않았지만 나는 아빠의 피를 많이 받은 게 확실하다. 아빠도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으로 티가 나는 스타일이다. 감정적인 것보다 일처리가 안 될 때 특히 그런데, 나도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서 회사에서 꼬인 일들이 있었다.
상사한테 혼나기도 하고 나 역시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원래 혼나는 것에 별로 타격을 안 받는 스타일이고 죄송하면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씩씩하게 잘 말한다.
최고의 스트레스는 이걸 '내'가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습이 가능한가?-> 불확실했음(스트레스 가득)
수습이 가능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가? -> NO (스트레스 만땅)
무튼 이런 사고의 흐름으로 인해 발진도 더 오래갔던 것 같다. 일이 해결되자마자 발진이 많이 나아졌다. 이건 뭐 진료일지가 아니라 일기가 된 것 같지만 진료 일지는 매번 같은 말만 써대니 독자들께 이런 이야기가 조금은 프레쉬하길 빈다.
다시 진료시간으로 돌아와 보자면, 의사 선생님께 발진이 일어났다는 걸 말씀드리니 아주 혀를 내두르시며 ㅇㅇ약은 이래서 쓰질 못한다며 어떤 약을 빼버리셨다.
이제 점점 내가 먹는 약이 뭔지 감흥이 없어져서 약이 바뀌어도 구글에 찾아보지 않는다.
내가 불행이 나만 비켜가지 않는 것 같다 하니 이럴 땐 잠깐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냥 가라앉는 게 낫다고.
나는 저 밑바닥에서 발버둥 쳐서 드디어 수면에서 찰랑이게 되었는데 찰랑이다가 감당 못할 정도로 넘친 탓일까?
발진이 일어났을 때 너. 무. 더워서 집에서 거의 벗다시피 하고 지냈다. B는 아마 내 팔을 봤던 것 같다. 그냥 상처라고 생각했을지, 물을 엄두가 안 났는지 여태 내 팔에 대해 안 물어보고 그냥 있다.
긴팔 잠옷만 입다가 민소매 잠옷을 입으니 아주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 또한 이 일을 B에게 전할 용기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지.
한 번 민소매의 맛을 봤으므로 나도 이제 구태여 긴팔소매를 잡아당기며 숨기지 않겠다. 물으면 묻는 대로 답해주고 묻지 않으면 나의 사적인 일들을 지켜주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겠다. 혼자 끙끙 앓을지 모르는 B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