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향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전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남을 사랑하는 방식은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
그게 나에겐 최고의 사랑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그런 상황이 된다면’
‘내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직 생각이 얕은 나는 ‘마음이 편한 일’을 선택할 것 같다.
내 마음이 편한 일 말고 엄마나 아빠의 마음이 편한 일.
식스텐과 함께 지냄으로써 부모님이 걱정된다면, 그건 내가 감내해야 할 감정이며
부모님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거스를 수 없듯이
나 역시 나의 부모가 늙어가는 것으로 인한 걱정과 아쉬움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나 역시 식스텐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함께 죽는 일을 택할 것이다.
나의 선택권이 없는 삶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태어나고 네 번의 죽음과 이별을 겪었지만
그리 슬펐던 적도, 슬프지 않았던 적도 없다.
인간의 생애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었으나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플 뿐이었다. 더 이상 조부께 무언가를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이리 시간이 짧을 줄 알았다면 옆에서 말동무를 좀 더 해드렸을 것이다.
내 짧은 견해로는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여쭤봤을 것이다.
엄마는 이 책을 읽고 할아버지_엄마의 아빠_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 했으나
나는 아빠가 떠오르지도, 할아버지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병상에 계시던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선택권이 없는 채로 가장 오래 계시던.
그리고 그 모습을 내가 가장 오래 보았던.
나는 부모가 되어본 적 없어서 부모의 마음을 지레짐작할 뿐이지만,
자식에게 무언가 부탁하는 일은 참 어려운가 보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을 때 자식에게 부탁을 하는 걸 보니.
네 분은 마음 편히 마지막을 보내셨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