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진료일지
이제 꼬박꼬박 일지를 적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간 미리 써뒀던 일지가 동났다.
글을 쓰는 일은 가끔은 너무 깊게 나를 돌아봐 힘들고
종종 나를 풀어낼 수 있어 좋다.
금요일이던 진료를 수요일에 급히 당일로 바꿨다.
회사에서부터 너무 힘들어서 일종의 S.O.S 개념이었다.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그런 일을 반복하는
나의 문제를 감당하기 힘든 날이었다.
선생님은 매번 그리 큰 문제도 아닌데
왜 그리 죄책감을 크게 갖냐고 물어보신다.
나에겐 큰 문제이기 때문에 그 말이 이해가 안 간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연민을 갖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만 연민을 느끼지 못하냐고 하신다.
나는 나의 힘듦이 타당하다고 느껴진다.
자기 연민의 감정은 느껴본 적 없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신기한 점이 있는데,
답변의 주체가 나보다 선생님일 때가 많다는 점.
내가 대화를 할 때 유독 질문이 많아 그렇기도 한데,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감정 교류를 하거나 깊은 대화를 할 사람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 선이 되게 높아요. 해마님은.”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런 대화가 필요 없는 사람이 있고,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해마님은 그런 대화를 갈망하시는데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풀어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 같아요. “
-“제가 그런 대화가 필요한 사람인가요? 원래는 그런 게 필요 없는 사람이었는데요…”
“어쨌든 지금은 감정적인 부분 혹은 깊은 내면을 대화로 풀 필요가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풀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
-“선생님은 어떻게 푸세요? 스트레스나 그런 것들요. “
“저는 사람을 만나면 제 얘기를 잘하는 편이에요. 근데 사실 저도
잘 못 푸는 편이에요. “
-“ㅎㅎ그런데 왜 저한테는 방법을 찾으라 하세요ㅋㅋㅋ“
한바탕 웃고 선생님의 결론은 항상 이렇다.
“저도 잘 못하지만, 그게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해마님도 그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시고 일 말고 다른 것들로
푸실 필요가 있어요. “
항상 긴 대화의 짧은 부분만 인용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시간 내가 “왜”에 대해 질문하고 선생님은 고민하며 답변하신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일상에 대해서도 자주 여쭤보는데, 선생님은 좀 다르실까 어떨까 해서
묻는 것도 있다.
근데 항상 듣는 답변은 “저도 그래요”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선생님은 누구나 자기 연민이 조금씩은 있고,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나는 그게 왜 없는 걸까. 모든 게 타당한 벌 같을 뿐..
일 말고 다른 것들을 찾아보라는 선생님이 말씀이 가혹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도망가고 싶다. 땅으로 꺼지고 싶다.
그 정도의 에너지는 없다.
여러 의미에서 글쓰기를 좀 더 생활화해야겠다.
다른 방법으로 나를 벌주는 것보다,
글쓰기로써 나를 똑바로 대면하는 일이
좀 더 건강한 벌(역설적이지만)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