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라앉다 7

25년 3월 30일

by 해마

새벽에 자꾸 깨는 요즘, 오전이 너무 길어서 몇 주 만에 헬스장에 갔다. 천국의 계단을 탔는데, 나에게 벌을 준다는 생각으로 탔다. 한 발 한 발 얹는 걸 고개를 숙여서 똑바로 보며 탔다. 이렇게라도 속죄하고 싶었나 보다. 천국의 계단은(이걸 어떻게 천국의 계단이라고 지었을까. 99%의 확률로 반의어라고 생각한다) 어쨌건 벌을 주기엔 아주 적합한 도구다. 벌을 받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나약한 나는, 꼴랑 30분을 타고 내려왔다. ‘아, 더는 못 타겠다’ 하고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을 때 내게 또 한 번 실망했다.


사람들과 있다가 내 방으로 혼자 돌아오는 건 몇 배로 고독하다. 그렇다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건 아니다. 이 방에서 혼자 밤을 감당해야 하는 게 힘들고 슬플 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철수를 만나기를 조금 두려워하는 중이다. 헤어지고 이 방으로 혼자 돌아올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10년 전쯤 강의를 들었었던 철수께 문득 안부인사를 하고 싶었다. 워낙 좋아했던 철수이기에 종종 철수 생각을 했지만 실행에 옮긴 건 처음이었다. 예전에 주고받던 메일이 한메일이라, 메일주소를 다시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참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메일을 찾았다. 철수께 안부 메일을 보내는 것뿐인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철수는 글을 쓰시는 분이라, 글을 잘 다듬어서 메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나는 대로 적어 수정도 없이 보냈다. 철수가 이 메일을 받으면 당황스러울 수도,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항상 ‘어른‘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나의 갈증과 이기심은 철수가 느낄 감정을 잠시 외면했다. 한 편으론 스쳐 지나가는 학생 1에 지나지 않던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편할 것 같다. 내가 적어 보낸 글들의 무게가 한 층 가벼워지는 것일 테니까.


나는 눈이 좋지 않아 렌즈를 낀다. 안경과 렌즈는 항상 약간 어지러울 정도로 타이트하게 맞춘다. 조금이라도 흐릿하게 보이는 게 싫어서다. 렌즈를 고집하며 안경을 잘 안 끼는 이유도 눈앞에 막이 하나 더 있는 기분이 싫어서다. 이런 나에게, 약을 먹으면 몽롱해지는 기분은 좆같다.(평소 비속어를 잘 쓰는 편은 아닌데, 이 이상으로 설명할 단어가 없다.) 멋대로 몽롱해지는 것 같은 약을 빼고 먹는다. 업무가 많을 게 뻔한 날에는 아침약을 패스하기도 한다. 나는, 또렷한 정신으로 하루를 지내고 싶다. 몽롱한 게 싫어 자꾸만 눈을 부릅뜬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나를 더 힘들게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라앉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