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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음 Jun 18. 2023

접촉사고, 누구의 탓인가

남탓하기, 찌질함의 극치

 퍽. ‘......?’ 잠시 영혼이 쏘옥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채 어안이 벙벙한,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이 낯설지 않다. 상대 차종을 확인하기 위해 다급히 차에서 내렸다. 파란색과 흰색을 번갈아 원 안에 품고 있는 BMW 마크. 오마이갓! 접촉사고도, BMW도 모두 처음이 아니다. 5년 전 쯤 이미 주차를 하던 중 BMW를 박는, 500만원 어치의 값비싼 경험을 한 전적을 가지고 있는 나였다. 주체할 수 없이 벌렁벌렁 요동치는 심장도,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찌그러진 내 얼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것은 유난히 번쩍번쩍 광을 내며 우뚝 서 있다. 원망의 눈초리를 한 번 보내 보았지만 꿈쩍도 안 한다. 놀람과 당황함으로 죄 없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을 진정하고 우선 그것의 상태를 파악해야만 했다. 가느다랗지만 매섭게 실눈을 뜬 채 주위를 돌며 꼼꼼히 스캔해보았다. 범퍼 위 하얀 스크래치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흐리지만 제법 길게 몸을 늘이고 있었다. ‘상대도 사고의 빌미를 제공했을 거야’ 실낱같은 기대감이 몽실몽실 피어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기대감은 이내 사방으로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렸다. 아무리 다시 봐도 서 있는 매무새에 한 치의 오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정해야만 했다. 일단 상대 차주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이런 미심쩍은 일에 직면하면 과정을 차례대로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자 처음부터.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 보통 왼쪽 길을 통해 나온다. 좀 더 멀어 보이는 오른쪽 길보다 왼쪽 길이 더 빠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애마 마티즈를 찾아 차에 시동을 걸던 것까지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택배 트럭이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왼편에 서 있었던 것만 달랐을 뿐이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 나와야 했다. 그러다 바로 오른쪽 옆에 주차되어 있던 BMW에게 박치기를 한 것이다. 우씨. 택배 기사는 왜 하필 거기에 차를 세운 것일까? 탓하고만 싶다. 접촉사고의 1차 원인은 큰 덩치를 무기로 나를 가로막고 있던, 저 택배 트럭이라고.      



 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택배차를 피해 사이드미러를 보며 핸들을 오른쪽으로 확 틀었을 뿐이다. 잠깐! ‘사이드미러를 보며’ 이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걸리네. 당시 키 176cm 정도의 아들이 조수석에 끼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특히나 책들로 부풀어 오른 가방을 등 뒤로 멘 채였다. 결코 날씬하지 않은 사이즈로 가늠해볼 때 그는 사이드미러를 가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미러가 안 보이니까 몸을 시트에 확실히 붙여” 예전에 반복적으로 내뱉었던 말이 뇌리에 스쳤다. 갑자기 몸집이 큰 아니, 운전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그가 밉게 느껴졌다. 가방을 바닥에 내렸어야지 왜 등 뒤로 메고 있었던 거야? 오늘따라 가방은 왜 그리 뚱뚱했던 건데? 애꿎은 가방까지 세트로 묶여 원망의 화살을 맞고 있었다. 비난하고 싶다. 접촉사고의 일정 부분의 책임은 아들에게도 있다고.      




 그러나 곧 사고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핸들이 한 바퀴 돌아간 채로 주차되어 있던 것이 분명하다. 돌아간 핸들만큼 당연히 타이어 바퀴 또한 틀어져 있었을 것이다. 한스 로슬링의 저서 <팩트풀니스>에서 말하고 있는 ‘비난 본능’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을까?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단다.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으라고도 했다. 접촉사고를 낸 사람은 나 자신이면서도 애꿎은 희생양을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 찌질함에 맞닥뜨린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를 지적하던 남편의 말들이 볼륨 업 되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차를 삐딱하게 대충 대지 말았어야지, 바퀴를 똑바로 해놓으라고 말했었잖아’. 울고 싶어졌다. 복잡하게 뒤섞인 마음을 눌러가며 휴대전화를 열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정말 납작 엎드려야만 했다. ‘내가 잘못했어’를 시작으로 사고의 자초지종을 이실직고했다. 다행히 택배차나 아들 탓은 양심이라는 필터에 이미 거르고 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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