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고 감정표현 서툰 남편과 살고 있다. 결혼 후 10년 정도는 남편을 바꿔보려고 많이 애를 썼다. 하지만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번번이 헛수고였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 혹은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라는 혹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 이런 고민이 심각하게 피어오른다. ‘내가 이 세상에 뿌린 두 아들은 어쩌지?’ 난 지성인이니까 과학 시간에 배웠던 유전과 환경의 측면에서 곰곰이 따져보았다. 성향도 유전이 된다면 ‘감성적이고 친절한 나’와 ‘무신경하고 말수 적은 남편’의 유전자 중 어느 것이 우성일까? 도무지 모르겠으나 이미 타고난 성향은 어쩔 수 없을테니 패쓰! 우리 집의 가정 환경을 가만 생각해보자. (이 부분에서 눈물 한번 훔치고)아무리 점수를 후하게 준다 해도 우리 가족 분위기가 그다지 친밀하거나 대화가 많지는 않다. 부부는 닮아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던가? 결혼 초 하루 일상을 쉼 없이 재잘대던 나 역시 말수 적은 남편을 따라 (집에서만) 과묵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때 두 아들을 스윗 가이로 키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만들어내고 싶다. 일차적으로 (결혼을 할지 말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아들의 아내이자, 나의 며느리가 될 남의 집 귀한 딸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나 역시 대화 통하는 살가운 아들과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아들을 스윗하게 키워내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엄마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집안일에 먼저 생각이 미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욱 맞벌이가 기본이요, 남자가 집안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할테다. 방학이라 빈둥거리고 있는 큰 아들에게 먼저 설거지를 시켰다. ‘이제 너도 클 만큼 컸고 엄마, 아빠 모두 일하느라 바쁘니 너 시간 있을 때 설거지 정도는 해 줘’ 라며 미션 지시를 시작했다. 워낙 손으로 하는 것에 능숙하지 못하고 생활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아들임을 익히 알고 있다. (눈물 한 번 더 훔치며)엄마를 닮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설거지하는 과정을 나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모임 다녀올 테니까 설거지 부탁해!’
상냥하게 부탁을 하고 집을 나섰다. 야무지게 할 것을 기대했느냐? 물론 그건 아니다. 완벽은 아니어도 대강만 해놔도 칭찬 세례를 퍼부어 줄 마음으로 가득했다.
외출 후 귀가하여 싱크대를 무심히 본 후 진심 아연실색 할 뻔 했다. 설거지 한 것 맞느냐고 아들에게 확인을 하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수심이 깊은 수영장으로 변모된 설거지볼이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작은 그릇 2~3개가 입수한 상태였다. 워낙 가벼운 그릇들인지라 물속으로 잠수하거나 고개를 거꾸로 박고 있지는 않았다. 즉 둥실둥실 뜬 채로 호기롭게 물멍을 하고 있는 상태, 딱 그거였다. 그나마 수질이 양호하다는 것에 위로받을만 할까? 음식물 찌꺼기나 주방세제 거품으로 가득 찬 물이었다면 훨씬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첫 번째 도전은 이렇게 실패였다. 아무리 비틀어 짜내도 칭찬은 할 수가 없었다. ‘설거지 후에 그릇은 식기 건조대 위에 올려놔야 한다’는 지시사항을 내가 누락했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그걸 꼭 말로 해줘야 한단 말인가?
첫 번째 실패 이후 미션 한 가지를 추가했다. 설거지한 그릇은 꼭 건조대 위에 정리하기! 두 번째 설거지를 시킬 때 ‘더 이상 실패는 없겠지?’라고 조심스레 생각했다. 음식물 쓰레기 정리나 싱크대 위 얼룩 제거 등의 세심한 정리까지 기대한 것도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기대치가 높은 엄격한 엄마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이번에도 설거지 결과가 못마땅할 줄은...... 이번에는 깨끗히 몸을 씻은 그릇들이 물 밖으로는 나와 있었다. 아무렴,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지시대로 몸을 잘 씻어낸 식기들은 건조대 위에 있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깨끗해진 식기들은 너무도 고고하게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에 찰방찰방 물을 가득 담은 촉촉, 아니 축축한 상태로 말이다. 아들을 불러 울컥 삐져나오려는 화를 억누르며 말을 건냈다. ‘아들, 설거지가 이게 뭐야’. 아들이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띈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릇들을 뒤집어 놔야 물이 빠지지’ 이쯤에서 내 마음에 빙의해보시라. 독자라면 샤우팅 창법을 썼을 것 같은가? 물론 나는 아니다. 지금껏 크게 속 한 번 썩인 일 없는 착한 아들에게 샤우팅이란 가당치도 않다. 단 답답함에 가슴을 칠 뿐이고 일일이 여러 번 말해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를 뿐이다.
아빠를 닮아 무심한 녀석임에 분명하다. 앞으로도 집안일을 알려줄 일이 막막해진다. 꼭 알려줘야 하느냐고? 당연히 아닐 수도 있다. 닥치면 어떻게든 못 하겠냐만은 이왕이면 집안일도 잘 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녀석 독립시킬 때까지 내가 편하자면 조금씩 가르쳐 시키는게 나을 것 같다...... 라고 쓰고 있으나 답답함에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