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해방: 자본의 굴레를 벗어난 즐거운 기록
사회적 의무를 잠시 내려놓고 소망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가로이 거닐며 음료를 마실 때, 나를 제한하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소위 '행복한 삶'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졌을 때 비로소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사회가 강요하는 화폐 가치와 자본의 지배력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던 고통을 멈추었다.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기로 마음먹자, 비로소 즐거운 철학적 사유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사유를 이어가던 중, 문득 이러한 행위가 화폐 가치를 지닌 '무언가'로 변환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만약 사유가 경제적 가치로 치환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응당한 의무로부터 더 멀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철학적 사유를 화폐 가치로 바꾸는 일이 사회적 의무로부터의 해방이라 믿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행하는 모든 일 중 이것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러한 방식의 직업적 책임을 스스로 부여하고 싶었다. (사실 직업적 책임이란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아야 성립되는 상호 보완적인 행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나의 사유를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글을 쓰고 그것을 엮어 책으로 파는 방식이다. 아마 이것이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즐거운 직무일 것이다. 생각을 글로 옮기고, 그 글을 책으로 만들어 돈을 받고 파는 과정에서 당사자는 커다란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며, 그 에너지는 간접적으로나마 대중에게 전달되었을 터다.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은 깊은 지적·철학적 사유를 직접 수행하는 것—즉, 자신의 논리와 타인의 논리를 대조하며 진위를 밝히고 그 과정에서 성장을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도,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저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길들이기에 급급할 뿐, 새로운 창조의 영역에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회의 발전은 생각을 파는 방식을 책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예술 분야로 넓혔으나, 정작 본질보다는 '포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목을 끌기 위한 화려한 포장은 때때로 사람들을 환희에 빠뜨리며 사유의 행위에 매료되게 했지만,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사회 규범의 한계는 결국 가치 본연보다 외관에 치중하게 만들었다.
미디어와 네트워크가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지적 사유의 산물은 인터넷을 통해 아주 저렴하게(혹은 공짜로) 소비되고 있다. 마치 초콜릿 껍질을 까먹듯 손쉽게 소비되면서 상품 자체의 명목 가격은 낮아졌지만, 사실 우리는 그 대가를 기본 생활 물품의 화폐적 가치에 분담하여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지적 산물의 가치가 이미 지불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는 같은 양의 물로 흙바닥을 적실 때 '스포이트'와 '분무기'를 사용하는 차이와 같다. 스포이드로 물을 떨어뜨리면 한 방울마다 전후 차이가 극명하지만, 분무기를 사용하면 서서히 젖어가는 모습에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지적 사유의 소비에 지출이 없을 것이라는 오해는 지적 허영이나 감각적 쾌락을 충족하기 위한 과소비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약간의 시간과 손가락 움직임 정도만 투자한다고 믿기에, 자신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무가치한 것처럼 취급하곤 한다.
이러한 소비자의 태도에 발맞추어 생산자들 또한 깊은 사유에 집중하기보다, 자극적인 포장과 얕은 생각으로 무장한 '인스턴트식 상품' 생산에 몰두하게 되었다. 결국 지적 사유의 산물은 그 본연의 가치를 잃고 단순한 사치품이나 생필품 소비를 위한 매개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연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정신적 고양 활동을 단순 상품화하여 소비의 도구로 만드는 데 동참해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상업 형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성행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다만, 파괴적인 자본 앞에 휘둘리지 않겠노라 다짐한 내가 소득을 위해 내 즐거움의 본질을 흐려야 할지 의문이 들뿐이다.
결국 나는 그런 길을 택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기로 했다. 다만 그것들이 무가치하게 버려지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기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분명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것이나, 그것이 명백한 사실로 규정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그 소망들이 누군가의 사고를 왜곡하는 단순 정보가 된다면, 앞서 비판했던 저가 상품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내가 기록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내 행위의 가장 원초적인 동력원이기 때문이다. 사유의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오롯이 전달함으로써, 독자들도 나와 함께 사유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생각에 잠겨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오늘의 햇살은 꽤 저돌적이어서 나뭇잎에 부딪칠 때마다 강하게 부서졌다. 부서진 햇살 옆으로 드리운 그림자는 화사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돌계단에 앉아 있을 때 불어온 바람은 유리잔 속 얼음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날씨는 조금 거칠었지만 왠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는 듯했다. 마치 나의 의지가 발현되고 지나친 책임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