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삶을 살 것인가?

보편적 가치의 배신

by 글 쓰는 흰둥이

공정과 정의, 평화와 도덕은 약자가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이었다. 규칙이 없는 삶 속에서, 강한 존재에 밀려 도태되고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강한 자에게 먹을 것과 생명을 빼앗기지 않으려, 인간은 집단을 이루었다. 아무리 강한 생명이라도 집단을 상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다른 강압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으며, 그것을 정의와 공정이라 이름 붙여왔다.


역사를 보면 정의와 공정으로 세상을 바꾼 사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가치들이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불이익, 그리고 그로부터 기인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불이익이란 단순히 재산이나 금전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편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배우고 실천해 온 이들이, 이러한 절대적 규칙이 위배되는 것을 목격하며 느끼는 강한 배신감까지 포함한다.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 표출은 '행동했다'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에, 어떠한 결과도 보장할 수 없다. 만약 특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이후의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까지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대체로 우연한 사고가 이후의 대변혁과 가치 탄생의 시발점이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 사회의 보편적 가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다. 이 가치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까지는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 속에서, 때로는 보편적 가치가 효율과 미래지향성의 후순위로 밀리기도 한다. 몇몇의 부정한 권력가와 자본가들은 그들의 여생을 위해서라도 그것들을 외면해 버린다. 하지만 그들은 늘 보편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척한다. 지금만 보더라도 우리는 법을 수호하고 집행하는 경찰관과 법관들을 존경하며, 사회를 원활히 운용하는 공직자들에게 조아렸으며, 자본사회의 정점에 선 자본가들을 신성시 여겼다. 이렇듯 그들이 누리는 지위적 이점을 인정해 왔다. 사회는 그런 믿음을 강요해 왔고, 우리는 그들의 논리대로 믿고 행동해 온 것이다. 그들은 타인이 성실히 지켜낸 정의 위에서 안락하고 풍요롭게 살아간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보편적 가치를 절대적이라 믿으며 그것을 지키는 데 정성을 쏟아왔다. 그리고 정작 그 가치를 지키려는 약자들끼리 서로의 도덕성을 비난하며 다투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했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이 이제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약자의 삶을 사는 우리가 정의와 공정, 평화와 사랑 같은 가치를 온 힘을 다해 지켜낼 필요가 있을까? 분명 이런 보편적 가치를 세상 누구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최근까지 인간 사회는 고정적 정의론에 입각한 사회구조를 시민들은 믿음으로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패한 정치인과 공직자, 편향적인 법관과 폭력적인 경찰과 그들의 편에 선 기업가들에 대한 극심한 분노와 불신을 내포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전 세계 각국은 실제로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기득권들 간의 상호 합의와 부정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순환의 고리는 이제 더 이상 끊어낼 수 없을 듯 견고해졌고, 일반 시민들의 눈에도 보이는 듯하다. 보이는 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은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부정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가진 사회 시스템에 대한 순진무구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토록 맹목적으로 믿어온 시스템에 민낯을 직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제는 그들이 토해내는 정의와 공정, 평화와 도덕에 작은 질문을 던져볼 차례가 아닐까 싶다.


(해당 글에 삽입된 삽화는 글의 분위기와 테마를 살리기 위한 ai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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