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의한 시민 권리의 타락.
국민의 정치적 참여의 주요한 방법으로 투표와 시민운동이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전통적인 민주사회의 정수이자 핵심 가치였다. 수많은 논쟁과 목숨을 건 사투 속에서 인간이 쟁취해 낸, 최소 인권을 위한 무기였다. 왕정을 벗어난 사회는 권력을 배분하고 쓰임을 재정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올바르게 써줄 자들을 추려내어 공통의 지도자로 추앙한다. 간단한 이치이다. 그렇게 선출된 이들은 모두의 뜻과 의지를 헤아려 끊임없이 연구하며 더욱 올바르기 위해 정진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이라는 것,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그토록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욕망의 성장은 무한하고, 집단의 성장 또한 무한하다. 그리고 이것들을 지지하는 눈부신 기술 발전이 있어왔다.
서구 철학에서 기인한 논리적, 분석적 사고를 기반으로 과학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며, 우리는 고통과 인내라는 인간에게 불편한 환경과 기능을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고통과 인내의 부재가 곧 행복과 풍족의 실현이라는 착각에 빠졌고, 부재중인 고통과 인내의 자리에 개인의 욕망을 채워 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잉여 시간을 얻어낸 인류는 더 강한 쾌락과 더 많은 고통의 부재를 원했고, 그것들에 순차적으로 '인간의 권리'라 명명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누릴 수 있는 쾌락은 누리는 것이고,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 편이 생존이라는 모든 생명체가 지니는 본능적 의지와도 부합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이미 고통과 인내를 부정적 관념으로 지정해, 이를 완전히 절멸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야기가 상당히 옆으로 새어 나왔다. 민주적 가치의 정수, 투표와 시민운동에서 어쩌다 인간성의 타락이라는 주제로 넘어왔을까. 나는 이 두 가지를 연결 지어볼까 한다. 인간에게 인간성의 타락은 특정 집단이나 개체에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모두에게 고르게 나타나는 인류학적 변화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지금 당장 무인도로 들어가 나무 꺾어 물고기 잡으며 살아가라 한다면 인권을 운운하며 결사반대할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내 옆집 사람도, 윗집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집단의 고위 계급을 차지하던 이들은 어떠할까? 물론 혁명과 변혁으로 새롭게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이들도 포함이다. 그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마땅한 권리를 포기하라 한다면, 순순히 그럴 수 있을까?
도덕성의 부재와 인간성의 타락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다. 앞선 글에서도 많이 설명해 왔지만. 우리가 지키는 보편 가치의 원천인 도덕과 신앙, 사랑 같은 것들은 인간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 사실은 지배자 위치에 있는 이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이 사실을 피지배자 또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이러한 보편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 단결되지 못한다.
신의 권위와 지배력을 이양받은 자본과 기술의 영향력 안에서 효율성이 인류를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어 주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효율에 대한 강렬한 믿음은 되레 일반 시민이 가진 유일한 무기인 정치 참여의 도구들을 변질시키기 시작했다. 투표도, 시민운동도 모두 선출되기 위한 효율적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두 방법에 동참해야 한다는 맹점을 찌른 것이다. "당신들이 이 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손해 보지 않을 선택지만을 당신들에게 제시하겠다." 이것이 그들이 고른, 효율성이 대입된 투표와 시민운동의 의의이다.
이러한 무자비한 양자선택 과정을 실체화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계급이 존재하니까. 또 대다수가 낮은 계급 속에 살아가니까. 하지만 그들도 고위 계급과 같은 한 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을 유혹할 가장 뚜렷한 욕망을 아니까.' 이렇듯 시민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싸구려 포퓰리즘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런 가치를 추앙하는 이들의 결집은 여타 보편 가치의 수호를 외치던 이들, 소속 집단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힘쓰던 이들마저 시민들의 정치 참여 도구를 '효율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비법'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더 이상 이 사회에 선출자와 투표자 사이의 상호 이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선출을 위한 방법론으로 여겨지는 시민 참여 기법들 속에서 '동참할 것인가, 동참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강요받고 있다. 권력을 유지하고 쟁취하기 위한 자들의 차가운 효율적 분석만 가득한 선택지 속에서 우리의, 나의 정의는 완벽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