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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Aug 19. 2024

디지털 교육이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디지털이주민이라오

개학날이자 복직 첫날이 밝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건 나의 방어기제였다.

실제로는 걱정이 제법 되었는지 꼬박 밤을 새우고

출근을 했다.

책상 위엔 친한 선생님의 선물이 놓여있었다.

아침부터 나의 복직을 축하하려고, 또는 걱정이 되어서 온 몇몇의 선생님들 덕에 새 교무실에서의 어색함도 조금 덜 수 있었다.


복직하기까지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새로운 디지털교육 프로그램, 교육과정들은 9개월 동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9개월은 긴 시간이었다.

공부해야 할 것들이 가득 쌓였다.

하이러닝, 캔바, 노션, 자율시간, 디지털 교과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해 수업을 한다는 앞자리 선생님은 개학 첫날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나도 배워서 수업에 적용해야겠지.

새로운 평가계획 양식에도 에듀테크 관련 수업을 언제 어떻게 할지 적어내라고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 모두 에듀테크, 인공지능, 디지털 수업에 집착하고 있었다.


나는 03학번으로,

그 유명한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는 슬로건의 희생자다.

실제로 그 슬로건은 지켜졌다고 보기 어려웠고

모든 것을 다 잘하는 나의 경쟁자는 수두룩했다.

두세 가지 잘한다고 이길 수 없었던 것이었다.


개인적으론 이가 갈리는 슬로건일지 몰라도

교육적으론 옳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잘하는 올라운더가 아니라,

잘하는 한 가지를 더 잘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게끔 하는 게 이 시대의 방향에 맞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방송이 생겼다고 별밤 라디오가 사라지지 않았고,

밀리의 서재가 생겼다고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스마트폰이 생겼다고 종이 신문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좀 더 다양해졌을 뿐이다.


디지털 세상이 될수록

나는

소설과 시의 아름다움,

유려한 문장에서 오는 논리의 탁월함을 가르치고 싶다.

차가운 기계가 아닌 따뜻한 종이로 전해지는

진짜 관계와 인간미를 알려주고 싶다.

그것들을 아는 스페셜리스트가

디지털 기계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모두가 디지털 교육을 외칠 때

나 같은 아날로그파도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디지털교육이 전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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