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 Aug 18. 2024

거짓말이 전부는 아니니까

진실답게 말하는 거짓

십수 년의 교직생활 중

2학기에 학생들을 처음 만나는 일은 처음이다.

이미 적응이 끝난 학생들에게

새로운 선생님에게 다시 적응하라고 하는 일은

미안한 일이다.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11월에 겪었을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에 대한 부채감은 아직도 가끔 나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건 각오해야 한다.


학기의 처음, 중간, 끝 그 어느 지점에 교사가 바뀌는 일은 흔해졌다.

악성민원 발생지인 학부모를 탓할까,

학교라는 조직의 쓸데없는 자율적 무책임성을 탓할까.

직접적인 피해는 교사가,

간접적인 피해는 학생이 보고 있다.

사회현상이자,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임이 분명한데도 해결의 과정도 논의도 더디기만 하다.


새로운 학생들과 친해지는 것은 나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나의 전임자 선생님에게 적응되어 있는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어색해했다.

어색한 그 공기를 뚫고 나는,

예능출연자에 빙의해 온갖 유머를 섞어 내 소개를  했다.

"자, 선생님은 이런 사람이야. 그 외에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해 보자~"


"선생님, MBTI가 뭐예요?"

"혈액형은요?"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남편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등 가볍고 개인적인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순간 나를 멈칫하게 하는 질문들도 있었다.


"선생님, 교직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누구인가요?"

"선생님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뭐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작년의 그 일과 관련된 학생이었고,

가장 힘들었던 일 역시 작년의 그 일이었지만,

나는 두 번째 세 번째 즈음에 있는 답지 중 긍정적이고 그럴싸한 것들을 골라

아이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진실된 마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작년 그때도 나는 같은 마음으로 거짓말을 했었다.

아이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선생님이 많이 아픈 걸로 하자. 실제로도 마음이 많이 아프고."

라는 말로 이별을 고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학교를 떠났다.

이후, 학교엔 괴소문이 퍼졌다.

 "걔네 엄마가 OO선생님 보내버렸대. 국민신문고에 글 쓰고 교육청에 민원 넣고 계속 괴롭혔대. 여기저기 제보하고 난리도 아니었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진실을 그 학생 스스로 무용담처럼 내뱉었고, 그것은 사실이 되어 전교에 퍼져나갔다.


실은 그 엄마는 나에게 그리 강력한 병가 사유가 되지 않았다. 내 잘못이 없었기에 기다리면 그만이었고 상담과 약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교사에게 가장 힘든 상황은 무엇일까?

같은 업을 지닌 이들로부터 참을 수 없는 요구를 받았을 때이다.

교권보호위원회에서 교권침해 만장일치 판정이 났지만 나의 동료교사와 관리자는 도리어 나에게 사과를 강요했다.

그들의 요구는 학교의 안정을 위한다는 선의를 가장한 집단린치였다.

것이 가장 큰 나의 병가 사유였다.

하지만 그 학생과 학부모는 진실을 모른 채 착각하고 있었고, 이후 그 소문도 내 탓이라는 듯 욕설 문자를 보냈더랬다.


다 좋다. 그래.


착각이 전부는 아니니까.


나의 거짓말이 전부는 아니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전부는 아니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