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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Aug 21. 2024

악수가 전부는 아니니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복직을 고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가해자였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학부모에게 사과하라고, 고개를 숙이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서 있으라고 강요했던

그 사람이 아직 학교에 있다.


작년에 병가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병가를 낸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당신이라고

정확히 이야기했다.


사과를 들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하지만 기대는 없었다.

나이를 무기로, 경력을 무기로,

무슨 말이든 요구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리 없었다.


그는 정확히 '그. 런. 말. 한. 적. 없. 다.'라고 했다.


아,

수많은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역시, 쉽지 않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작년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의 마지막 말은,

'그렇게 제가 해야 한다면, 죽을 것 같아요.'였다.

사람이 그런 강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도대체 이런 뚱딴지같은 말을 왜 했던 걸까?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준지도 몰라'

이것이 나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길 바랐다.


복직 첫날, 저기 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여어~~~ 이게 누구야~~"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가온다.

악수를 청하는 그에게

나는

손사래로 답했다.


그런 통화를 하고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다니.


그래, 좋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그 사람의 가벼움에

오류가 되지 않은 나의 생각을 슬프게 바라봤다.


십수 년의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누군가의 악수를 거절해 본 적 없는

나에게

그의 악수를 거절한 일은 많이 씁쓸한 일이었다.


그러나

악수를 한다고 나의 학교 생활이 좀 나아졌을까?

오히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괜찮다.

악수가 전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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