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가족들의 아침을 차리고 나의 점심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싼다.
가해자들이 있는 학교에서
급식실 밥을 먹는 것은 소화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마주 보고 밥을 먹는 것은 상상도 힘들다.
다행히 친한 선생님들 대부분 도시락파였기에,
나의 이 행동이 유별나거나 까탈스러워 보이지 않아 쉽게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5일간 쌀 도시락을 위해
일요일 오전이나 오후는 반찬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멸치볶음, 두부조림, 진미채볶음, 오이무침 등 적당한 밑반찬을 만들고
메인 요리도 한 두 가지 준비해 두면
맞이하는 평일이 두렵지 않다.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 들여 음식을 한 적이 있던가.
점심마다 나는 나에게 감사하며 밥을 씹는다.
고등학교 시절 0교시부터 시작해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 오려면
두 개의 도시락이 필요했다.
급식을 하긴 했지만, 너무 맛이 없어서
도시락 두 개를 당당하게 요청했다.
(고3의 끝 모를 당당함이었다.)
엄마의 두 도시락은
영양만점 각기 다른 반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두 개의 도시락이,
지금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밥이 전부는 아니지만,
고3이 된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사랑과 응원 아니었을까?
오늘은 복도에서
그럭저럭 안면이 있었던 선생님을 만났다.
보자마자 그 선생님은 묻는다.
"괜찮아? 급식은 왜 안 먹어?"
9개월 만에 만난,
9개월 동안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사람이,
절친이 물을 만한 질문을 두 가지나 했다.
분명 악의는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솔직한 대답도 어렵다는 게 분명하다.
타인을 걱정하는 것이
꼭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또 배운다.
그래, 뭐 어때, 난 지금 그 질문에
미소를 지을 만큼은 되었는걸.
"선생님~ 밥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적당히 싸와서 먹어요~ 적응하기도 바쁘네요~"
얼렁뚱땅 넘어가 본다.
그래,
(가해자들이 섞인 급식실에서 먹는)
밥이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소중하니까.
그 언젠가
엄마가 싸주신 두 개의 도시락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성을 가득 담아 나에게 먹을 밥을 보낸다.
꼭꼭 씹어 잘 소화시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