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울한 내색 한번 보인 적이 없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
서운하다가 화도 났으려나.
순수한 눈을 가진 몇몇 아이들은
나를 아름답게 기억해 줬다.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그 아이들은 나의 진심을 본 셈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진심을 느낀 아이들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환희였다.
그것으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나의 직업, 나의 자존심, 나의 사람. 나의 남은 삶.
의리까지 있던 몇몇 아이들은
나의 복직을 알고 학교로 찾아와 파티를 해주었다.
왜 선생님이 병가를 냈었는지 묻지 않고,
왜 그때가 아닌 지금 돌아왔는지 묻지 않고,
그저 나의 컴백 자체를 축하해 주는 아이들.
졸업을 한 아이들이 여기까지 시간을 내 찾아와 주는 정성.
그 자체로 환희다.
나의 무엇을 보고 아이들이 이렇게 해주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 아이들이 정이 많고, 의리가 있어
어떤 선생님이라도 이렇게 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고마운 일이고,
인생에 남을 소중한 순간이다.
어떤 사람에겐 그냥 스쳐 지나갈 이런 순간들이,
고통을 이길, 큰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순간이 전부는 아니다.
하루하루 바삐 해내야 하는 미션들이 있고,
건조하게 맞이하는 얼굴들이 있다.
표정 없는 상황들에 숨이 막히기도 한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나의 얼굴도 건조하고, 표정이 없어질 수도 있다.
사람에 대한 실망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 뿐이다.
기를 쓰고 막아내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기를 쓰며
산다.
건조한 표정의 나는 되기 싫으니까.
나의 사람들을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소중하니까.
그리고 나의 사람들도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