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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Aug 25. 2024

수업이 전부는 아니니까

스미는 인성교육

예전에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다가 끝이 나면,

그날 한 이야기 주제들이

엔딩크레딧으로 촤라락 하고 올라간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기에,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바뀌는 주제들,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는 배려까지.

나도 학생들도 배웠으면 하는 흐름이다.


학교의 수업은 학원의 수업과 다르다.

학습내용을

학생에게 주입하고,

학생에게서 다시 인출되는지

확인하는

인풋과 아웃풋의 활성화가 학원의 주요 기능이다.


학교는 그런 수업이 전부는 아니다.

'알쓸신잡'처럼 학습내용 중간중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잡다한 이야기들이 끼어든다.

나는 그것을 수다라 칭하고 인성교육이라 부른다.

(혹은 안전교육, 혹은 융합교육일지도.)


맞춤법 수업에서는,

휴대폰 메시지로 맞춤법을 틀리게 보낸

남자친구, 여자친구에게 얼마나 매력을 덜 느끼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TPO에 맞게 올바른 언어를 쓰는 일의 중요함을 나의 다양한 경험담에 맞춰 이야기한다.


'노새 두 마리'라는 소설 수업을 하면서는

다양한 경험이 직업 선택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AI 시대에 발맞춘 직업 변화도 상상해 보는 글쓰기도 해본다.


체육대회를 앞두고는

체육대회 반티 구입기를 들려주며

환불받는 말하기의 중요성,

실용교과로서의 국어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또 체육대회를 하며 다친 학생과 선생님 이야기,

응급실 실려간 이야기를 하며

안전교육도 한다.


어느 날은 과학과 인문을 넘나들기도 한다.

사랑의 유효기간과 사건의 지평선,

웜홀과 인터스텔라,

가장 차가운 과학적 용어가 시어로 태어난 사례까지.

아이들은 수업인 듯 아닌 듯

애매한 나의 이야기를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으로 듣는다.


그게 난 참 좋다.

반짝이는 눈을 보고 하는 수업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귀하디 귀한 것이다.

작년에 병가를 내면서도

'그 수업 잘하는 선생님이 가셔서 안타깝다'는 소리가 가장 큰 위로의 말이기도 했다.

'쓸모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을 잘한다는 건

'쓸모 있다'에 '가장'이란 부사를 붙여도 충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을 할 때 내가 행복하고,

내 수업을 좋게 봐주는 많은 이들이 있어

나는 학교에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학습 내용만 주입하는 그런 수업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고,

더 중요한 가치를 논하는,

수업이 전부는 아닌,

그런 나의 수업이

나는 참 소중하다.


내일 나의 알쓸신잡 수업엔

어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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