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하고 일주일 정도가 흘렀다.
주변 선생님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한다.
주로 목감기나 몸살이 대부분이다.
학기 초의 늘 있는 학교의 풍경이다.
나는 그동안 푹 쉬어서인지,
긴장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인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아픈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서
자치 시간에 들어가게 됐다.
오늘은 2학기 학급 임원선거를 하는 날이다.
4명의 아이들이 나왔다.
회장 후보 2명과 부회장 후보 2명인 데다
성별이 달라 접전이 예상됐다.
회장은 쉽게 판가름이 났다.
부회장은 기권표가 여럿 나오며 동률.
재투표 전 후보들의 연설을 다시 듣고 투표를 했는데, 일곱 표차로 4번 후보가 당선됐다.
공교롭게도 회장과 부회장 모두 남학생들이 뽑혔고
여학생들은 아쉬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괜찮은 척하는 얼굴과 눈물이 나올 듯 참아 내는 얼굴이 교차한다.
아이야, 괜찮아. 이게 전부는 아니야.
너의 삶에는 수많은 일들, 기억들, 마음들이 무한하게 있단다. 그러니 이게 전부는 아닌 거야.
남학생들은 교탁에 서서 뽑아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야, 이게 전부는 아니야.
너의 삶에는 수많은 일들, 기억들, 마음들이 무한하게 있단다. 좋은 일, 힘든 일, 기쁜 일, 난처한 일. 그러니 이게 전부는 아닌 거야.
무엇이든 그게 전부는 아니란다.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이 말은 나를 살린 말이다.
엉망진창이 된 내 삶 속에서 무언가가 전부가 아니란 말은 다른 희망을 품게 했다.
또 자신이 흘러넘쳐 오만해질 때에도
나를 돌아보게 하고,
잠시 겸손해지게 한 말이기도 하다.
어떤 것에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좋을 때도
난처할 때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정이 되기도 하고
견딜 수 있게 되기도 했다.
힘든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것'의 자리에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무언가를 넣어보면, 숨통이 트이고 한발 디딜 의욕이 생긴다.
그래도 무언가가 전부인 듯 열정적인 삶은 가끔 부럽다.
무언가가 전부인 듯 열정을 다했던 과거의 나도 그립다.
다시 돌아갈 순 없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시간을 되돌릴 능력은 나에게 없고,
나는 지금의 나도 멋지다고 생각하기에.
부러움과 그리움을 느끼는 것도 나의 일부분이고, 그것도 사랑할 수 있다.
전부라고 생각하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산산조각을 내어 겨우 겨우 살던 나는
이제 산산조각 난 나의 부분 부분을
하나하나 곱게
바라보며
산산조각 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나는 산산조각을 얻었고,
이것도 사랑하는 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