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로 향하는 2주간의 크루즈, 그리고 가족이라는 시간
여행을 준비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렘과 번거로움이 동시에 찾아오는 일이다. 옷을 고르고, 서류를 확인하고, 약을 챙기고, 혹시 빠뜨린 것은 없는지 몇 번이고 목록을 다시 들여다본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준비는 조금 다르다. 목적지가 멕시코라서도, 크루즈라서도 아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간다는 사실이 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우리는 곧 2주간의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배는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멕시코의 여러 항구를 거쳐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일정표를 보면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정박하는 도시는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낯선 도시들보다도, 나는 이 여행에서 우리 가족이 어떤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게 될지가 더 궁금하다.
여행 준비는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며 문득 깨닫는다. 이 옷을 마지막으로 입은 것이 언제였더라. 이 신발은 아직 발에 맞을까. 몸도, 취향도, 삶의 속도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여행 가방 앞에서 나는 지금의 나를 확인한다. 예전처럼 무작정 많은 것을 넣지 않는다.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일이, 여행뿐 아니라 삶 전체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여행에는 아들(47세)과 며느리가 동행한다. 아들이 어릴 때 처음 바다를 보여주던 날이 떠오른다. 작은 손으로 모래를 쥐고, 파도가 발목을 적실 때마다 깔깔 웃던 아이. 그 아이가 이제는 한 사람의 남편이 되어 나와 같은 배에 오른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족이 된 그 사람도, 이제는 여행의 동반자다. 이 사실이 마음 한편을 조용히 흔든다.
부모로서 자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은, 사실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요구한다. 하나는 여전히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독립한 성인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크루즈라는 공간은 이 두 마음을 시험하는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같은 배에 있지만 각자의 일정이 있고, 각자의 취향이 있고, 각자의 쉼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완전히 함께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건강한 거리일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함께 있음’의 새로운 의미를 배우게 될 것 같다. 예전의 가족 여행은 늘 계획과 통제가 필요했다. 몇 시에 일어나야 하고, 어디를 가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각자 선택하고, 원하면 합류하고, 아니면 혼자 시간을 보내도 되는 여행이다. 이것은 가족이 흩어지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성숙해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며느리와의 여행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류 한 장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만들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 알게 되었다. 식탁에서, 산책 중에, 바다를 바라보며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 여행이 그 시간을 선물해 주기를 바란다.
크루즈 여행은 특이한 시간감을 만들어낸다. 목적지로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동 자체가 여행이 된다. 바다 위에서는 급할 이유가 없다. 휴대전화 신호가 약해지고, 하루의 리듬은 식사 시간과 해 질 무렵의 빛에 따라 흘러간다. 이 느린 시간 속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더 또렷하게 만나게 된다. 나는 그 시간이 기대된다.
한편으로는, 이 여행이 인생의 한 구간을 조용히 표시해 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자녀는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고, 나는 이제 부모로서의 역할을 조금 내려놓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함께 떠나는 이 여행은, 붙잡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잘 보내기 위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슬픔만은 아니다. 오히려 감사에 가깝다.
짐을 싸며 약을 챙길 때, 나는 몸의 변화를 실감한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않던 것들이다. 여행은 언제나 현재의 나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 사실이 나를 위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떠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이번 여행은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이 여행은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더 이상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부모가 아니라, 함께 걷는 어른이다. 때로는 뒤에서, 때로는 옆에서, 때로는 잠시 떨어져서 각자의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 관계의 변화가 나는 좋다. 조금 낯설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다.
배 위에서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혹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같은 노을을 보고, 같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시간. 그것으로 충분한 가족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꼭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그냥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
나는 이 여행을 기록할 것이다. 사진으로, 짧은 메모로, 그리고 마음속에 남는 장면들로.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하고 싶은 것은 감정이다. 자녀를 동행자로 만나는 이 낯설고도 감사한 감정. 떠남 앞에서 느끼는 설렘과 약간의 쓸쓸함.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삶에 대한 조용한 신뢰.
여행 준비를 시작하며 나는 알게 된다. 이번 여행은 멕시코로 가는 크루즈가 아니라, 가족의 다음 계절로 들어가는 항해라는 것을.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이 시간을 건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가방을 닫으며 나는 생각한다. 잘 다녀오자. 많이 보려고 애쓰지 말고, 많이 느끼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저 주어지는 시간을 받아들이며, 바다처럼 넓게.
그리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조금 다른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 변화가 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