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바다 위의 생일

2025년 12월 21일

by 이사벨라


오늘 나는 예순아홉이 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제는 내려놓을 때”라는 말이 먼저 따라올 법도 한데,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이제부터 시작” 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 멕시코 리비에라 크루즈의 갑판 위에 서면, 사방이 바다다. 360도가 검푸른 물빛으로 이어지고, 그 끝은 늘 눈앞에서 멀어지기만 한다. 경계가 보이지 않는 풍경 앞에서 나는 내가 품고 있는 다음 걸음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뻗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는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같은 표정을 반복하지 않는다. 햇빛이 스치면 비단처럼 반짝이고, 구름이 지나가면 먹빛으로 가라앉는다. 파도는 멀리서부터 오지만, 내 발끝에서 사라진다. 그 단순한 리듬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내 인생도 그렇게 흘러왔다. 어떤 계절은 찬란했고, 어떤 계절은 깊고 어두웠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은 결국 내 안에 한 가지를 남겼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아직 나를 끝내지 않으셨다”는 고백이다.


예순아홉에 신학원을 졸업하고, 곧 교차문화신학 박사 과정을 시작한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조금 과감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배움이란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라, 소명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것을. 신학은 머리의 과목이기 전에 삶의 방향이고, 교차문화는 멀리 있는 타인을 공부하는 학문이기 전에 내 안의 낯섦을 다루는 훈련이다. 그래서 이 새로운 과정은 “더 많이 성취하겠다”는 야심이라기보다,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도에 가깝다. 바다처럼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 그 항해는 내 마음의 좁은 항로를 넓히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의 풍경이 더 특별한 이유는, 이 푸른 고요가 곧 따뜻한 식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생일 저녁 식사를 한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며느리와 함께. 생각해 보면, 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을 이 식탁에서 배웠다. “함께”라는 단어의 무게, 빵을 나누는 행위가 지닌 위로, 말없이도 전달되는 사랑의 언어. 가족은 때로 완벽한 합창이 아니라 각자의 음으로 부르는 작은 성가대 같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더 진짜 은혜가 자란다. 오늘 저녁의 웃음과 안부와 잔잔한 대화는, 어떤 화려한 축하보다도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예순아홉.

나는 이 나이가 주는 고요를 사랑하게 되었다. 젊은 날처럼 모든 것을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이 진짜 소중한지 더 빨리 알아차린다. 그러나 고요는 멈춤이 아니다. 바다도 고요해 보여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결국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내 인생의 다음 장도 그런 식으로 펼쳐질 것이다. 큰 소리로 선언하지 않아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촛불을 앞에 두고 소원을 빌 때, 나는 아마 이렇게 속으로 말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셔서. 그리고 아직도 길을 주셔서.”

바다 한가운데서 맞는 생일은 내게 묻는다. 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항로의 확실함이 아니라, 동행의 신실함이라고. 검푸른 바다 위에서도 길은 생기고, 길은 결국 사람에게 닿고, 사람은 다시 사랑으로 돌아온다고.


오늘의 바다는 깊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그 깊이를 두려워하기보다 배워가고 싶다.

예순아홉의 생일을 맞아, 나는 다시 학생이 된다. 다시 배우는 사람, 다시 걸어가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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