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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y 10. 2024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교의 의료대란

서로 주치의가 되는 사이

최근 몇 년 동안 저학년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저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아무래도 고학년에 비해 교사 평균연령이 좀 높은 편이다. 그래서 교사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주제가 건강관리나 질병과 사고, 노후에 집중되는 때도 많다. 

교사들에게는 직업병이 있다. 보험 가입할 때 교사를 대상으로 한 특화 보험이라는 테두리에 지정되어 있는 몇 가지 병명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류상 분류되는 것들이고 실상은 병명이 더 다양하고 증상은 더 가까이 있다.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목디스크, 방광염, 소화불량 및 위장병, 성대결절, 후두염 등이 일반적으로 교사들을 괴롭히는 직업병들이다. 


          

이를 또 나누어 보면 이렇다. 첫째, 자세와 관련된 질병들이다. 하지정맥류나 족저근막염, 목디스크가 여기에 해당된다. 교사의 학교생활 특히 초등교사의 수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자세와 연관된다. 교실 안을 수없이 돌아다녀야 하거나 설명하는 등 서 있는 자세로 인하여 다리와 발 등에 증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목디스크는 교재 연구, 업무 등으로 인해 책이나 컴퓨터 사용이 많은 이유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방광염은 학교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의 특성에 따른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호기심이 많고 자신의 이야기를 수시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수업 중,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야기를 하러 교사에게 온다.

“선생님, 이 그림 보세요. 무슨 꽃을 그린 거게요?”

하며 어떤 행동인가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선생님, 화장실에서는 꼭 노크를 해야 되지요? 또 안에서 다시 노크를 하면 안에 사람이 있는 거니까 문을 만지면 안 되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칭찬받고 싶어서 하는 말일 때도 있다.

“선생님, 선생님은 종이 접기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어요? 몇 개예요? 저는 어제 다섯 개를 접었어요. 선생님은 몇 개를 접을 수 있어요?”

“선생님, 우리 앞집에 이사를 왔는데 할머니가 혼자 사신대요. 선생님은 할머니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몇 층에 살아요?”

하며 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올 때가 있다. 이런 질문도 아니면 느닷없이 이럴 때도 있다.

“선생님, 다음 주에 우리 삼촌이 소개팅한대요. 우리 엄마 아빠도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했는데!”

라는 어른들의 낱말을 써서 말문을 열기도 한다. 아이들의 말에는 어떤 맥락도 상황도 존재하지 않지만 각각에게는 그 나름대로 무척 중요한 일들에 대한 것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서 교실 문을 나설 때까지도 팔을 붙잡고 계속 질문 공세가 이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교사의 쉬는 시간에는 질문과 이야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유를 마시라고 해야 하고, 교과서를 넣으라고 해야 하고, 다른 공책을 꺼내라고 해야 하고, 오늘은 잊지 말고 어떤 학습지를 제출하라고 말해야 하는 등 수없이 많은 것을 수합하거나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쉬는 시간 10분은 온데간데없이 다음 수업의 시작 시간이 되고 만다. 개구쟁이 남학생들에게 소리 높여 

“수업 시작하는 시간은 잘 지킵시다. 약속했어요.”

라고 말해놓고 교사 스스로 어길 수 없어서 화장실을 가려다 말고 다시 교탁 앞에 설 때가 많다. 그러는 시간을 한 학기 보내고 나면 방광염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 소화불량과 위염 등 위장병은 생활지도와 맥락을 함께 한다. 점심시간에도 학생들을 인솔하여 급식실에 가야 하고, 음식이 쏟아지지 않게 잘 배식받았는지 확인해 가며 식사해야 한다. 먼저 먹고 운동장에 뛰어놀다가 다치는 남학생들이 있을까 봐 밥을 먹는 동안 자꾸 운동장을 힐끔힐끔 살펴보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급식실에 비해 학생 수가 많으면 급식 시간도 잘 지켜야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식사를 마쳐야 다음 시간에 급식실로 오는 학생들에게 자리를 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젓가락질이 느리거나 느리게 음식을 씹는 아이들이 조금 더 서둘러 먹을 수 있도록 살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후다닥 먹는다. 얼마만큼 많이 먹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식사할 때만큼은 여유를 즐기며 음미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나의 추측도 급식 시간에 쫓기듯 정신없이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급식실에서는 항상 급하게 먹느라 음식 맛이나 향이나 색깔들을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는 식사를 하기 때문에 급식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나의 식사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다. 학생들과 급식을 먹지 않을 때만이라도 온전히 식사를 위한 시간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식사 속도가 들쑥날쑥하니 위장은 일관성 없는 주인에게 휘둘려 병이 들고 만다.          

음료와 간식도 위장에 문제를 준다.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교실이나 귀가 터질 것처럼 정신없이 질문 세례를 받고 난 후에 꼭 나타나는 것이 있다. 스트레스인지 뭔지도 모를 허기 같은 것이, 당을 보충해야만 살 것 같은 어떤 느낌이 말이다. 귀에서 아무 소리가 안 들리는 어느 교담 시간이나 하교 후가 되면 찾아온다. 특히 학기 초에는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학년 휴게실이나 복사기 앞에 가면 비슷한 상황의 선생님들 여럿이 음료로 간식으로 당을 긴급하게 보충하고 있다.

당 보충의 시간이 오전이었다면 급식 시간에는 식욕이 낮아진다. 어차피 먹더라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라면 그냥 지나쳐도 좋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혹은 반대의 경우도 있다. 너무나 바쁘고 여유가 없는 쉬는 시간을 보냈다면 당 보충조차도 사치일 때가 있다. 쉬는 시간에 무엇인가를 영접할 기회가 없었다면 급식실에서는 짧은 시간에 폭풍처럼 허겁지겁 입으로 쏟아 넣는 식사를 하게 된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소화불량이나 위염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저녁 시간에는 마치 그 분주했던 식사의 기억을 지워내기 위해 필수 조건이라도 되는 듯 맵고 짠맛 음식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 위장병은 뗄 수 없는 질병이 되고야 말았다. 그래서 십 수년을 먹어 와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맛없는 양배추 즙을 일 년에 몇 번이나 주문하게 된다.

아, 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었네! 그것은 바로 매년 늘어가는 몸무게다. 당 보충을 이유로, 스트레스 해소를 핑계로 차곡차곡 잘도 쌓아간다.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 항공 마일리지나 캐시백 포인트도 아닌데 말이다.          

네 번째, 목에 찾아오는 증상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은 마이크의 힘을 많이 빌리기도 하지만 교사의 학교생활에서 여전히 목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수업 외에도 수없이 해야 할 말들이 많이 있고 그러한 안내와 당부와 약속의 말들은 수업 자료로 준비하는 그 흔한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자료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아이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고, 갑작스러운 교실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을 즉시 지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의 목은 항상 일을 하게 되고 성대결절과 후두염은 반갑지 않은 덤이 된다.       

나는 체질상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목의 통증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한다. 여름에는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즙, 도라지즙을 달고 살아도 목의 통증은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진단을 받지는 않지만 한 학년도를 보내면서 특정 시기가 되면 자가 진단이 가능할 정도로 목이 많이 아파 오는 시기가 있다. 

학기 초, 여름 방학을 앞두었거나 개학 후 얼마 지나지 않을 때, 그리고 학기 말이 주로 그러한 시기에 해당한다. 물론 교실은 언제나 시끌벅적하지만, 특히 학생들이 흥을 감추지 못하고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는 데시벨 대결이라도 하듯 서로 높아지는 시기가 그렇다.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에너지 넘치는 너희를 가르치느라 목이 많이 아파. 목소리를 좀 줄일까?”

라고 지금 외치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초가을, 방학을 보냈던 텐션이 아직 떨어지기 전이면서 추석을 앞둔-사실 어린이들은 추석 준비와 거의 관련이 없는데도 말이다.-특유의 흥분 상태로 살고 있어서 말이다.   


  

금의 동학년 선생님들은 갖가지 질병과 그 원인치유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한다. ‘이런 증상일 때는 이렇게 해보라저런 증상일 때는 이 병원에 가보라이런 운동이 좋고 저런 자세는 좋지 않다목이 아플 때는 즙보다는 차가 좋다며 서로의 증상을 걱정해 주고 자신의 경험도 알려준다주변에서 좋다고 들었던 건강 정보들을 총동원해서 우리는 서로의 증상을 낫게 해 주려 애쓴다.

그런 대화를 나눌 때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혼자만 아프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쓸쓸한 일인가? 비슷한 학교 상황과 사람들을 겪고,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고 있어서인지 각자의 증상과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때로는 동학년 선생님의 존재가 직업이 다른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세심하게 치유를 주기도 한다. 같은 상황의 동료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풀며 살아간다. 오늘도 같은 차를 마시면서 증상을 달랜다. 오늘도 학교 안에서 의료대란이 일어나고 아픈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서로에게 주치의가 되어주면서 살아가는 그 이름, 교사다! 



-2023년 가을에 쓴 글을 살짝 고쳐서 올린 것이므로 시기에 안 맞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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