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싫다. 무향을 선호한다. 화장품도 향기가 전혀 없는 것을 사용한다. 향수를 짙게 뿌린 사람을 만나면 눈살을 나도 모르게 찡긋한다. 내가 냄새를 싫어하는 이유는 엄마에게서 나는 냄새가 싫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친정엄마는 막냇동생을 낳고 돌 지난 무렵부터 일을 다니셨다. 과수원에서 복숭아 따는 일부터 시작하여 식당, 대학교 강의실청소, 아파트 청소 등 쉬지 않고 일하셨다. 그 중, 동네 백반집에서 제일 오래 일하셨다.
엄마는 오전 10시 출근하면 오후 4시 퇴근하셨다. 점심만 영업하는 식당이다. 오 남매 학교 보내고 일을 시작하면 저녁 무렵이 되기 전에 오셨다. 엄마는 서빙도 하고 설거지를 주로 하셨다.
엄마가 일을 많이 하고 오신 날은 특유의 내가 맡기도 싫은 냄새가 났다. 땀에 찌든 퀴퀴한 냄새다. 오 남매 키우기에 빠듯한 살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허구한 날 술 먹고 주정하는 할아버지, 아빠, 작은 아빠의 수발까지 엄마의 결혼생활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시댁 부모님 앞에서 숨 한번 크게 낼 수 없는 며느리, 아내였다. 엄마는 10명의 대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워킹맘 이해는 가지만, 난 그 냄새가 그토록 싫었다.
남편과 같이 식당 운영하면서 그 냄새가 나한테 났다. 손님이 숯불 닭갈비를 주문하면 주방에서 초벌을 해서 손님상에 나간다. 숯불 닭갈비는 네 가지 맛이 있다. 소금 맛, 간장 맛, 고추장 양념으로는 순한 맛, 매운맛. 닭갈비는 닭의 넓적다리 살로 만든다. 닭 껍질이 한쪽 면만 있어 처벌할 때 눌어붙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고추장 양념은 특히 타지 않도록 자주 뒤집어줘야 한다. 초벌은 특히 남편과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초벌도 숯불로 굽기 때문에 고기 냄새와 숯불 향이 가득하다. 옷에서부터 손까지도 식당 냄새로 몸을 물들인다. 집에 가면 내 몸에서 그 퀴퀴한 냄새가 나는걸, 나 스스로 느낀다. 어릴 적 엄마에게 맞았던 냄새가 이젠 내 몸에서 난다는 걸 알고 있다.
제주 이주 후 가게 개점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다. 5살, 3살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집에서 집안일만 하고 산적이 있었다. 어린이집 등원을 하는 시간은 남편이 자는 시간이다. 또 남편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항상 자정이 넘은 시간으로 아이들은 거의 자고 있다. 남편과 두 아이 얼굴 볼 시간은 없었다. 늦은 밤 퇴근 후 집에 들어온 남편은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자는 아이들 얼굴을 비비면서 씻지도 않은 채, 보고 있자니 화가 불쑥 났다. 나도 모르게 “냄새나 저리 가”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얘기지만 그날 이후 나에게 너무 실망했다고 한다. 힘들게 가족을 위해 하얗게 몸을 불사르듯 일하고 온 날, 냄새가 난다고 저리 가라고 하니, 어깨에 힘이 쏙 빠졌다고 했다.
내 몸에서, 남편의 몸에서 엄마한테 맡았던 냄새가 나는 게 싫었다. 사실 손에 물 묻히는 일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 평일에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 주말에 가족과 함께 쉴 수 있는 삶을 원했다. 현실은 숯불 닭갈비식당이 우리 집 생계 원천이다. 식당 아닌 브런치 카페, 패밀리레스토랑이었다면 나았을까?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숯불 닭갈비식당을 한다는 자체가 부끄러웠을까? 식당일을 하면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 해야 하는데, 그게 나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싫었다. 나는 받아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남편 일로만 여겼다.
가게 개업한 지 10년 차가 되었다. 두 아이 키워오며 우리 가족 생계가 곧 식당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먹고 사는 것이 가장 두려운 현실이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었지만 이젠 그 냄새가 우리를 먹여 살렸고, 덕분에 제주를 누리면서 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숯불 닭갈비식당 한다는 자체를 나 스스로 이젠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닭갈비식당 자체를 밀어내는 삶이었다면 앞으로는 숯불 닭갈비 초벌 해주는 여자로 나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마음이다.